하이든 형과 BTS RM 동생에게 있는 두 가지, 따뜻함과 합리성
- senior6040
- 2020년 10월 22일
- 3분 분량
<조선일보>Topclass 입력 : 2020.10.21
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하이든 고별 교향곡 4악장입력
요즘 저희 집은 날마다 둠칫 둠칫 힙합이 흐릅니다. 갓 십 대에 접어든 초등학생 아들 덕에 듣는 음악이 많이 바뀌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음악 선정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지만 이젠 아들입니다. 차를 타도 클래식을 듣기보다는 힙합이나 댄스 신곡을 많이 들어요. 아들과 같이 듣다 보니 어느새 저도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BTS의 RM이에요. 랩 몬스터라는 초기 활동명처럼 랩을 잘하는 그가 좋답니다. 리더라는 자리도 멋있고, UN 본부에서 영어로 연설했던 RM을 보고서는 더욱 좋아합니다. 아이돌 가수가 그렇게 영어를 잘하니 자기도 이제부턴 영어를 잘해보고 싶다나요? BTS의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리더 RM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아들이 좋아하니 그에 대한 기사를 많이 읽게 됐어요.

다름을 감싸 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이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합리적 중재자, 물러서지 않고 분쟁 상황에 적극적으로 나서 쌍방을 화해시키는 능력을 가진 RM!
톱클래스 10월호에 실린 그의 기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른도 못하는 일을 하는 그가 대견해 보였습니다. 때론 친구처럼 다정하게, 때론 멤버들을 대변하는 리더로, 여러 상황 속, 다양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조절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게다가 모두의 바람을 충족시킨다는 건 정말 지혜롭고 대단한 능력이죠. 18세기에도 이런 따뜻함과 합리성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요셉 하이든입니다. 소통의 리더십을 가진 음악가 하이든

프란츠 요셉 하이든 (1732~1809, 오스트리아)은 천재 모차르트가 나올 수 있도록 클래식의 기초를 닦아 놓은 사람입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의 삶은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보통의 음악가답지 않게 결혼도 하고 77세까지 장수했어요. 이렇게 평범한 그에게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하이든의 소통 리더십 때문입니다.
18세기 이전의 음악가들은 자신을 후원하는 종교 지도자나 왕, 귀족 등에게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치기엔 제한이 많았죠. 하이든에게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후원해 준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있었습니다. 후작은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어디든 자신의 악단을 데리고 다녔는데, 하이든은 그 악단의 리더였습니다. 개인에게 고용된 음악가였으니 하이든과 그의 악단은 후작의 뜻대로 움직여야 했죠. 어느 해 여름, 휴가를 떠난 후작은 별궁에서 체류가 너무 길어집니다. 당연히 단원들은 힘들었고, 가족들을 무척 그리워했죠.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후작 빼고는 모두 다 고달픈 상황입니다. 아 얼마나 난감한 상황입니까? 음악 들으며 좋은 곳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후작이야 좋겠지만, 집에 언제 가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단원들은 애가 타죠. 이런 단원들의 마음을 알아챈 하이든은 후작의 기분을 상하지 않으면서 단원들의 뜻도 전할 수 있을 방법을 찾으려 고민합니다.
그가 찾아낸 답은 역시 음악이었습니다. 후작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고별>이라는 제목의 교향곡을 연주함으로써 단원들의 뜻을 전달했어요. 이 교향곡은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서 연주자들이 한 명씩 자리를 뜹니다. 마지막에는 단 2명의 연주자만 남긴 채 곡은 마무리되지요. 누가 봐도 이건 집에 가자는 뜻입니다.
<고별 교향곡>은 하이든의 45번째 교향곡입니다. 교향곡은 심포니라고도 부르는데, 원래 이 단어는 ‘어울리는 소리’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발전했습니다. 여러 음들이 모여 어울리는 소리인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 모두들 다른 생각, 다른 입장이지만 같이 어울려 사는 게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는 음악이 바로 심포니죠. 전체 4악장인 이 곡은 빠른 악장-느린 악장-미뉴에트-빠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빠른 악장의 끝에 느린 부분을 추가해서 단원들이 떠나는 장면을 연출했던 하이든의 재치가 돋보입니다. 보통 곡의 마지막은 크고 빠르기 마련인데 하이든은 반대였어요. 단원들이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후작에게 음악으로 말하는 대목입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이 연주를 듣고 바로 본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소통 능력 대단하지요?
유머와 해학이 담긴 음악, 직접 말하지 않고도 충분히 전달되는 그의 재치. 이런 것들이 평범한 하이든을 빛나게 합니다. 그의 삶은 평범했지만 하이든은 음악사에서 특별한 일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교향곡을 104개나 작곡했고 현악 4중주 장르를 개척했으며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104곡의 교향곡 중 <놀람>, <고별>, <런던> 등이 유명합니다.
하이든은 우회적이지만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시대가 달라도 리더의 품격과 능력은 어디서든 돋보이죠. 18세기의 하이든이나 21세기 RM은 따뜻한 말투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모두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좋은 리더들입니다. 강한 카리스마와 강압적인 태도보다는 따뜻한 카리스마, 소통과 공감 능력이 중요시되는 요즘입니다. 윗사람이라고, 나이가 많다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죠. 리더가 된다는 건 왕관의 무게감을 견디고 선한 영향력을 보이며 그 자리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는 것입니다. 물론 말처럼 소통과 공감 능력을 지니면서 품격을 갖추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하이든 형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요? 18세기 하이든 형과 21세기 RM 동생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따뜻함과 합리성을 지닌 리더십을 배워봅니다. 하이든 고별 교향곡 4악장
지휘 다니엘 바렌보임 / 연주 빈 필하모니 2009년 빈 신년음악회 연주 글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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