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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어머니의 자리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5월 22일
  • 2분 분량

[뉴욕 중앙일보]발행 2020/05/22 이경애 / 수필가 


5월이다. 나무는 새잎으로 부풀고 바람은 부드럽게 얼굴을 스친다. 이 아름다운 봄, 어디에 코로나19 전염균이 있다는 말인가? 보이기라도 하면 요리조리 피하기라도 하련만…. 어머니 날이지만 예년처럼 모두 모여 즐거운 웃음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안타까운 5월이다. 어머니 날이고 아버지 날이고 올해는 다 생략하자는 문자를 미리 보냈음에도 자식들은 점심과 카드를 가지고 와서 잠깐 얼굴만 보이고 돌아가야 했다. 오래전, 우리가 처음 미국에 이민 와서 나가던 교회는 작은 교회였다. 5월 둘째 주 어머니 주일에 어쩌다 내가 헌금시간에 특별송을 하게 되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빌 파킨슨이 곡을 붙인 ‘Mother of mine(나의 어머니)’이었다. 한국말로 번안된 가사로 불렀는데 고국에 두고 온 내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어 어떻게 끝을 내고 들어왔는지 모른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권사님들도 눈가를 닦으며 왜 이렇게 울리느냐고 한 말씀씩 하셨다. 어머니… 어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연세가 많은 노인에게나, 어머니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이며 가장 가슴 저린 이름이다. 어머니보다 진실한 사랑을 주는 사람은 없으며, 낳을 때의 고통 말고도, 기르며 애쓰시는 그 마음을 커서 어른이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뚜렷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Mother of mine’의 영어 가사를 간단히 간추려 보면 ‘사랑하는 어머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 덕분이며, 당신은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셨지요. 내가 어릴 때부터 당신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옳은 길을 내게 보여 주셨고요. 나는 이제 혼자서도 똑바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을 내게 주신 어머니, 신께서 어머니에게 축복을 내리시도록 기도드립니다’ 그렇다. 자식은 잘 먹이고 잘 입혀서 그 키를 크게 하는 것만이 다가 아닌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러시아의 작가 ‘표도르 도스트엡스키’의 소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총 1800여 페이지나 되는 그 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그 오랜 여정의 끝이 너무나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기 어머니가 다른 4명의 형제의 불행을 보며 가슴에 짠한 슬픔이 차올랐다. 불쌍한 이 4명의 젊은이…. ‘그들에겐 어머니가 없었다’가 내가 내린 그들이 불행한 첫 번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낳아준 어머니는 있었으나 그들이 성장하기까지 옆에서 품어 돌보며 올바로 가르친 어머니는 없었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를 낳은 아젤라이다는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지참금을 가지고 표도르와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방탕함에 집을 나가 객사한다. 둘째, 이반과 셋째 알렉세이를 낳은 소피아는 신경쇠약증이 있어 두 아들을 낳고는 일찍 죽는다. 네 번째 아들 스메르자코프는 길거리의 거지 여인과 사통해서 낳은 사생아로 그의 생모 리자베타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는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하인들의 손에 키워지거나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한다.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속물에다 호색한으로 자식에는 전혀 관심이나 애정이 없는 인간이었으니 그 자식들이 어디에 기대어 온기를 느낄 수가 있었겠는가? 자식은 어머니의 눈물과 희생 위에 크는 여린 나무이다. 어머니의 자리, 어머니의 역할과 책임은 너무나 중하고 크다 하겠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31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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