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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월세 강요하는 부동산 정책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1월 19일
  • 2분 분량

<조선일보>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20.11.19


젊은 시절 프랑스에 유학 왔다가 눌러 앉은 60대 교민 C씨는 파리에서 35년째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쭉 세입자 신분이다. 그는 “그동안 낸 월세를 합치면 이 아파트를 살 수도 있다”고 했다. 처음에 그는 유학생이라 집을 살 여유가 없었다. 기반이 잡히고 나서 보니 어느새 파리 집값은 아득하게 날아가버려 엄두를 못 냈다. 그는 “돈을 잃어버리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나마 C씨에게 다행인 건 이사는 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집주인 실거주 외에 세입자를 억지로 내보낼 방도가 없다. 파리의 경우 한번 들인 세입자에겐 물가 상승률 이상 월세를 높일 수도 없다. 한국에서 임대차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자 “선진국은 임차인을 더 강력하게 보호한다”고 여당이 항변한 건 액면상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서방의 월세와 한국의 전세 간 차이를 무시하면서 커다란 함정이 생겼다.


파리의 한 부동산 중개 사무소/파리 이모빌리에



월세 세입자는 매달 뭉텅이 현금을 내야 하는 절대 약자다. 유럽에선 미리 기간도 정하지 않고 세입자가 원하는 만큼 살다 나가는 단순한 방식이기도 하다. 반면 전세는 오묘하다. 일시에 목돈이 오가는 금융의 개념이 접목된다. 세입자는 전세금을 돌려받는 채권자이고 집주인은 채무자다. 월세보다 복잡하지만 기간이며 전세금이며 조율해가며 탄력적인 계약을 맺어 편익을 키웠다. 하지만 이제는 ‘2+2년’이나 ‘전세금 5% 상한’처럼 정부가 짜놓은 틀에 갇혀야 한다. 유연한 합의가 막힌 데 따른 위험 부담을 집주인은 비용으로 전환해 세입자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집주인에게 전세를 월세로 바꾸라고 자꾸 강요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전세를 줘서 얻는 이득을 줄이는 정책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는 자가, 전세, 월세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지만 서구 국가들처럼 자가와 월세 사이에서 양자 택일하라는 압박이 몰아치고 있다. 당연히 월세살이로 생을 마감하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 단기간에 집을 장만하려고 바둥거릴 수밖에 없다.


서방 국가들이 세입자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것은 선진적인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 월세를 감당하느라 미래가 어두워진 이들에게 최소한의 방어막을 쳐주는 것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중환자가 아예 숨이 끊어지지 않게 막는 정도다. 이런 처방을 한국의 정부·여당은 종류가 다른 질병을 가볍게 앓는 환자에게 적용해 병세를 악화시키는 셈이다.


이제는 한국도 유럽·북미처럼 자가 소유자와 월세족 사이의 삶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의도를 모르겠지만 한국의 정부·여당은 중산층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부동산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만약 월세살이 하는 이들을 늘리는 게 목표라면 상당히 성공적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파리에 상주하며 유럽 소식을 전하는 유럽특파원입니다. 유럽에 관심 있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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