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스토리] 46년 '가위손 장인'의 눈물
- senior6040
- 2020년 9월 5일
- 2분 분량
[LA중앙일보]발행 2020/09/05 오수연 기자
타운 '153 이발관' 전인갑씨 코로나 못견디고 끝내 폐업 배무한·남문기 회장도 단골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인갑 사장이 텅빈 153이발관의 손님용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전 사장은 이발소를 닫은 후 지금은 친구가 운영하는 이발소의 자리를 하나 얻어 단골 손님 위주로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다. 평생을 함께 해온 가위 세트. 25년 창업 당시부터 이발소 입구에 걸려있던 ‘한국식 써비스’ 안내문. 거의 반세기 동안 쉼없이 가위질을 해온 전사장의 능숙한 손. 김상진 기자
갑작스러웠다. 지난 3월, 46년간 매일 들었던 가위를 내려놨다. 한국에서 20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26년을 해왔던 일이었다. 하루 20~30명의 손님으로 분주했던 이발관은 어느 순간 텅 비었다. 쉴 새 없이 움직였던 가위도 멈췄다. 환하게 이발관을 밝히던 전등도 꺼졌다. 코로나19는 그 바삐 움직이던 많은 것들을 정지시켰다. 지난 2일 LA카운티가 이·미용실 실내영업을 허용했지만 26년간 열려있던 LA한인타운 웨스턴길의 ‘153 이발관’(대표 전인갑)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전인갑(71)씨는 153 이발관의 폐업을 선언했다. 전씨는 “건물주가 렌트비도 25% 삭감해줬지만 3개월이 밀리고 나니 5000달러가 넘었다. 이대로는 버티기 힘들겠다 싶어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153’이라는 상호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전씨가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해 끌어올렸던 물고기의 숫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26년간 굳건히 버텨줬던 이발관이었다. 경기침체 때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단골들이 언제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달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발버둥을 칠 수 있는 여지조차 없는 불가항력의 것이었다. 그만의 일이 아니다. 전씨는 “이발관이 이제 타운에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번 코로나로 여럿 문을 닫았다”며 “타운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웨스턴이발관’도 이참에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4일 잠시 153 이발관을 다시 찾은 전씨의 눈이 아련하다. “아쉽죠. 여기서 벌어서 아이들을 다 키웠는데…. 오픈했을 당시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돼서 자기 밥벌이를 하며 잘 살아요. 덕분에 어렵지 않게 가정을 꾸렸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전씨는 그의 손때 묻은 업소 대신 앞으로 동서사우나 안에 있는 한쪽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을 아예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공간에서 단골들과 두런두런 주고받던 이야기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끝은 아니다. 지난 2일 실내 영업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단골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며 웃어 보였다. “단골들이 너무 좋아하시죠. 153이발관의 폐업 소식에는 ‘고생했다’며 위로를 해주시기도 하고….” 한결같이 찾아주던 단골들이다. 배무한 전 한인회장도 뉴스타 부동산 남문기 회장도 그의 단골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줬던 단골을 위해 동서사우나가 문을 열때까지 친구 가게의 한 자리를 빌려 이발을 해줄 예정이다. “지난 26년간 한인들의 도움으로 큰 고생 안 하고 살았어요. 너무 감사하죠. 그 감사함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어 나름대로 사회에 환원하며 살겠다고 노력했는데 다 지키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그는 이발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봉사를 이어왔다. 1996년 SAT 한국어 시험 채택을 지원하기 위해 ‘일일 이발소’를 운영해 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인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잘 견디셨으니 다시 한인타운이 활성화되고 좋은 때가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힘내시길 바랍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