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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똑똑한 시민이 불편한가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1월 21일
  • 2분 분량

<조선일보>김신영 기자 입력 2020.11.21


서울시 800억짜리 공사 시작 시민 소통 내세우더니 엉터리 10조원 ‘가덕도 공항’도 설명이 없다 혹시 시민이 많이 아는 게 두려운가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 시장도 없는데, 800억짜리 공사가 한창이다. /뉴시스



미국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3일 캘리포니아주(州)에선 또 다른 투표가 함께 진행됐다. 우버·리프트 등 승차 공유 서비스의 운전자를 ‘직원’으로 인정할지에 대한 투표였다. 대선이 워낙 요란해 한국에선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미국에선 이른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이벤트로 여겨졌다.(유권자들은 ‘우버 등의 종사자는 직원이 아니다’라는 쪽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캘리포니아에선 시민 62만명 이상이 서명하면 총선 때 해당 이슈를 투표에 부칠 수 있다. 이번 선거 땐 주택 임대료 통제 등 12개 주민 발의안을 투표에 부쳤다. 미국 50주 중 24주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시민에겐 법을 바꿀 힘이 부여돼 있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캘리포니아주는 각 발의안이 가져올 영향, 특히 경제적 파급력을 유권자가 이해하도록 주정부가 풀어 공개하라고 법으로 정해두고 있다. 우버 기사와 관련해선 이런 식의 설명이 상세하게 올라 있다. ‘(기사가 직원이 아니라고 결정되면) 승차 공유 회사 비용은 낮아지고 요금이 싸집니다. 그 경우 탑승자가 증가해 기사의 수입이 늘어납니다. 소득세가 더 걷힐 수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일대엔 요즘 갑자기 설명을 거두절미한 ‘삽질’이 시작됐다. 세종로 가운데 있는 광화문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는 800억원짜리 공사다. 지금도 막히는 세종로는 차선이 줄어들 예정이라 한다. 새 시장이 5개월 후면 선출될 시점에 난데없다. 서울시는 보도자료에 ‘지난 4년간 300회 넘게 시민과 소통하며 구상했다. 시민의 집단 지성을 모았다’고 적어 두었다.


도대체 무슨 소통과 집단 지성인지 궁금했다. 공개된 영상을 찾아보았다. 지난해 11월 열린 한 관련 워크숍 장면이다. 한 남성이 강의를 한다. “자, 이제 이 악기(‘밤벨’)가 가진 매력을 소개해 드릴게요.” 전체 워크숍 2시간 가운데 절반 정도가 악기 레슨이다. 같은 달 열린 ‘2차 토론회’엔 박원순 당시 시장이 왔다. 미리 뽑아둔 이들이 연단에서 덕담 비슷한 이야기를 2시간 30분 동안 풀어놓는다. 청중 질문은 30분 받고 끝이다. 서울시는 관련 홈페이지 방문자가 5만8000명이라면서 이것이 시민 관심이 높았다는 증거라 한다. 서울 시민은 1000만명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서울시 광화문 광장 관련 워크숍.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이런 악기 레슨으로 채웠다. /서울시 유튜브



서울시의 800억원짜리 공사 공표 다음 날, 정부와 여당은 한발 더 나갔다. 10조원짜리 ‘깜짝 결정’을 내렸다. 김해에 짓기로 한 동남권 신공항을 가덕도(부산)로 옮기겠다고 한다. 이미 가덕도는 지형상 부적합하다고 결론이 났었는데, 그냥 뒤집었다. 왜 김해가 아니고 가덕도일까. 제대로 된 설명은 찾을 길이 없다.


캘리포니아 시민 발의제를 연구한 로버트 스턴 미 행정학센터 소장은 한 논문에 이렇게 썼다. ‘숙의(熟議·deliberation)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상반된 견해, 사실, 정책이 초래할 영향 등에 대한 시민의 충실한 고찰이 이뤄지고 나서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 정보가 없이 표를 던지는 시민은 위험하다. 자유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 원칙이다. 한국 집권 세력은 나랏돈 펑펑 쓰면서 ‘시민의 숙의’는 무시한다. 결정한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하긴 시민이 정보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너무 깊이 생각하면, 이 정권에 득 될 일이 뭐 있을까.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 경제부+Mint 에디터 김신영 기자입니다. 돈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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