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터치! 코리아] K방역 신봉하는 광신자들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2월 26일
  • 2분 분량

<조선일보>김신영 기자 입력 2020.12.26


코로나 확산이 연말을 지웠다… 이제야 백신 계약이 이뤄졌다 백신이란 첨단 과학의 結晶조차 한국에선 분열의 도구다


화이자 코로나 백신. 한국이 25일 현재 구매 계약을 맺은 백신 중에 임상을 통과한 백신은 화이자가 유일하다. /AFP 연합뉴스



칼럼 마감일이 하필 크리스마스다. 아쉽진 않다. 거리는 어차피 적막하다. 정부는 엊그제 코로나 백신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우린 이제 계약을 맺고 있다. 총리는 백신을 앞서 맞기 시작한 나라가 “더 절박해서 그렇다”고 한다. 절박을 입에 담기 전 ‘폐업 안내문’이라도 검색해보면 안 될까. 수많은 자영업자가 절망 속에서 한 해를 접고 있다.


코로나 위기의 변곡점마다 문재인 대통령 입에선 ‘K방역’이 나온다. 수도권 거리 두기 2.5단계를 발표하는 연설문에도 “K방역의 우수성”이란 말을 넣었다. 확진자 1000명을 넘어선 날 “K방역의 성패를 걸고 총력을 다하자”고 당부하더니 코로나가 더 퍼지자 찬사 수위를 높였다.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와 인권의 성장이… K방역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마스크만으로 코로나와 맞서고 있는 국민의 무력감을 본다면 대통령의 자화자찬은 상식을 역행한다. 하지만 각도를 틀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 그의 말이 국민 전체가 아닌, 골수 지지층만을 겨냥했다면 어떨까. ‘K방역은 소중하다. 이를 공격하는 자는 적(敵)이다’란 프레임이 주문처럼 간단히 만들어진다.


대통령의 전략은 먹힌 듯하다. 정권의 맹목적 추종자에게 K방역은 공격해선 안 될 성역(聖域)이 되었다. 정부의 안이한 백신 확보, 급증하는 확진자 추이를 사실대로 전달하는 언론은 ‘K방역 광신자'에겐 이단처럼 낙인찍힌다. 코로나 방역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들이 겪는 괴로움을 지난 며칠 많이 목격했다. 험악하고 괴이한 욕설이 댓글과 이메일로 쏟아지고, 사진과 신상이 범죄 수준의 언어폭력과 함께 소셜네트워크에 돌아다닌다. 청와대 게시판엔 이런 글이 방치돼 있다. ‘K방역을 무시하는 ×들은 누구인가. 한국에 사는 일본×들인가.’


문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에 기반한 지지와 무조건적 광신은 다르다. 안드레 하이날 제네바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광신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정리했다. ‘지도자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선전 구호를 설파한다. 사회를 선악으로 양분해 분노를 겨눌 가상의 악마를 만들어낸다. 사실은 뒤틀린다.’ 광신의 세계에선 구호만으로 뭉치고, 증오하고, 공격한다.


코로나 백신과 관련한 사실관계는 복잡하지 않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지금 맞을 수 있는 백신은 없다. 정부가 확보했다는 백신은 화이자를 제외하곤 임상이 끝나지 않았다. 화이자는 내년 3분기에야 들어온다. 국제기구를 통한 백신 확보 프로그램인 ‘코백스(COVAX)’는 이르면 내년 1분기에 백신 배포를 개시한다. 인구 20%에 해당하는 백신을 공급하는 목표 시점은 내년 말이다. 정부가 이런 내용을 혼탁하게 뒤섞어 성공담처럼 발표하는 사이 여당 의원들은 전도자처럼 외쳐댄다. “세계가 K방역을 인정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을 취재하다 보면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토대로 이 혁신적 백신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나는 현대가 과학과 이성의 세상이고, 그래서 이런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라 믿는다. 그러나 백신이라는 과학의 결정(結晶)조차 편 가르기용 도구로 쓰이는 한국 사회, 그런 분열을 부추기는 정권, 그리고 그 맹목적 추종자들이 혐오를 분출하는 현실을 보면 때때로 좌절감을 느낀다. 여기가 21세기가 맞는가.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 경제부 김신영 기자입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