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세상을 지배한 남자… “성공은 하루 한 컵씩 이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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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0월 10일
- 3분 분량
<조선일보>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입력 20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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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슐츠 등 지음 안기순 옮김 행복한북클럽 568쪽 2만7000원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의 화려한 성공 신화를 일군 하워드 슐츠는 ‘성공한 사업가’라는 작은 틀에 가둘 수 없는 인물이다. 전작 ‘온워드’에서 스타벅스 성공의 비결을 밝힌 그가 이번 책에선 자신이 왜 그토록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강조하는 독특한 사풍(社風)을 일으키고 정착시켰는지 공개한다. 감동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숱하게 이어진다. 읽다 보면 슐츠 본인이 그토록 손사래 치는데도 그가 미국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슐츠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이번 책에선 그 사연을 자세히 들려준다. 슐츠는 뉴욕의 서민용 임대아파트에서 부모, 두 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마저 푼돈을 벌기 위해 밤마다 노름꾼들에게 빌려주는 바람에 현관 밖 층계참으로 쫓겨나곤 했다. 어머니가 노름꾼들 잔심부름을 하다가 성희롱 당하는 것도 지켜봤다. 생활비를 빌려 오라는 부모의 강요 때문에 어린 나이에 친구 어머니를 찾아가 돈을 빌리는 치욕을 맛봤고, 청년이 되어선 피를 팔아 대학을 다녔다.
이런 경험이 누군가에겐 운명을 저주하고 사회를 증오하는 뱀독이 되지만 어떤 이에겐 성공의 도약대가 된다. 슐츠는 단순한 성공 이상을 원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따뜻한 인간 드라마로 승화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노름꾼들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겼던 경험을 잊지 않았던 슐츠는 원두 파는 회사였던 스타벅스를 인수해 매력적인 만남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좌석 회전율을 높여 이익을 내기보다 고객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긴 테이블을 들여놓았다. 자신처럼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가 좌절하지 않도록 학자금을 대줬고, 소상공인 소액 대출 프로그램을 만들어 창업을 도왔다. 아버지가 골절 사고로 직장을 잃고 보험마저 해지 당해 온 가족이 막다른 골목에 처했던 아픈 기억은 파트타임 직원에게까지 건강보험을 확대하는 것으로 치유했다.

2017년 스타벅스 CEO에서 물러난 하워드 슐츠(오른쪽)가 직원 수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케빈 존슨 신임 CEO와 셀카를 찍고 있다 /행복한북클럽
그는 기업이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는 경영인이다. 오바마 정부 시절 부채 문제로 미 연방정부 폐쇄 사태가 빚어지자 수도 워싱턴 DC 소재 매장 120곳의 커피 컵에 ‘모두 함께(Come together)’라는 문구를 새겨넣어 여야 협치를 촉구했다. 업무 재개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으로 모은 청원서 200만장을 직원 20여명이 상자에 담아 백악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정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슐츠는 정부 부채를 늘려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취업난으로 미국인의 존엄성이 침해당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단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론 존엄이 회복되지 않는다며 “국민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양질이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가능한 목표다. 대중의 인기만 좇는 정치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는 말도 입 밖에 낸다. “국민은 존엄하지만 존엄성은 권리도 특권도 아니다”라며 저마다 분발하자고 촉구한다.

슐츠는 다양한 사회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사진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문구를 새긴 스타벅스 커피 컵.
슐츠는 이 책에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커피만 팔 거였으면 꾸지 않았을 꿈이다. 직원 복지를 늘리고 공익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내놓을 때마다 투자자들은 불편해했고 “스타벅스가 자선단체냐?”고 물었다. 슐츠는 그때마다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받아쳤다. 그가 만든 온라인 대학 과정인 ‘대학성취계획’을 밟은 직원들은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초록색 학사모를 쓰고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그런 청년들은 숙련자로 남아 오래 근무했고 승진 비율도 높았다.
‘미국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기획해 5달러짜리 팔찌 80만개를 팔았다. 기업들 동참이 이어져 1억달러 넘는 기금이 조성되자 소상공인을 위한 소액 대출을 시작했다. 슐츠는 이를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구명 밧줄’이라고 표현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인종이 함께(Race together)’ 운동도 펼쳤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며 전쟁에 나가 팔다리를 잃은 상이군인과 재향군인 또는 그들의 가족을 채용했다.
성공한 많은 경영인처럼 슐츠도 뛰어난 어록 제조기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스타벅스가 경영난을 겪게 되자 엉덩이 무거운 중역들을 불러모아 ‘진창에 담급시다(Get in the mud)’라는 새로운 경영 슬로건을 내놨다. 이사회 회의실이 아닌 매장을 돌며 현장을 파악하자는 제안이었다. 조직이 성공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자 “과거에 누렸던 성공은 권리가 아니다. 권리는 하루에 한 컵씩 매일 획득해야 한다”는 말로 각성을 촉구했다. 스타벅스의 초록색 로고를 장식한 것은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인어 세이렌이다. 슐츠의 인간 스토리가 마치 세이렌의 노래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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