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의 놀고 쉬고 일하고] 생각보다 쓸모 있는 연금
- senior6040
- 2020년 7월 7일
- 2분 분량
<글로벌경제신문> 승인 2020-07-08

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연금의 마음에는 사람이 있다. 노년의 존엄을 지켜 주려는 속 깊은 마음이 있다. 노년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일이 지금은 힘들지라도 언젠가는 열매를 거두게 된다. 지금 그것을 손에 쥐고 있지 않더라도 항상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하지 않은가. 노후의 든든한 버팀목이 ‘연금’이다. 연금제도를 믿어라.
연금의 마음
네가 젊어 돈 벌 때는 내가 너의 지갑을 사용하지만,
네가 늙어 힘들 때 너는 나의 지갑을 사용할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일은
오로지 늙고 돈 없어 힘들어 하는 노년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존엄을 지켜 주는 거야.
간혹 내게 문제가 발생하여 약간의 틈이 생기지만,
제주의 돌담이 그 틈을 통해 바람을 이기듯이
그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아.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일순간 꽃비를 흩뿌리며 사라지는
벚꽃은 아니니 안심하시라.”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 그것은 얼마나 완벽한 만족인가?”라고 시인은 말하지만, 그건 욕심 부리지 말고 살라는 뜻일 게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너무나 바빠 일에 치어 사는 사람들의 일종의 자구책이자 자기 암시다.
비극은 그런 사정과 배경을 무시한 채 덩달아 ‘무소유’와 ‘카르페 디엠’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이것들을 오남용하면서 ‘만족의 지연’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주고 저녁에 4개 주니 화를 내서 반대로 아침에 4개 주고 저녁에 3개 준다니 좋아하더라는 얘기다. 혹시 우리 인간들도 원숭이를 닮아서 ‘현재 선호’에 빠져 사는 건 아닌가. 미래를 대비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세금처럼 봉급에서 떼어가는 보험료가 황당하고 아깝다. “어느 세월에 연금 받는다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연금과의 관계가 상쾌하지 않은 이유는 ‘범주화된 지각의 오류’라는 것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폭을 현재에 가둬두고 미래를 이해하는데서 오는 착오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미래에 받는 연금은 보이지 않고 당장 봉급에서 빠져나가는 보험료만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보험료보다 더 많은 연금이 나온다고 해도 당장은 돈을 내기 싫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미래의 것보다는 현재 것에 더 가치를 두는 ‘높은 시간할인율’이 작용해서 그렇다.
노년의 삶과 평생 동행하는 연금
인생은 길다. 이미 우리는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이 실감나는 인생 100세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의 삶은 우리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길어질지도 모른다. 은퇴 후 30년, 아니 40년을 살아야 한다. 그때 가서 자신의 노후를 누군가가 준비해주지 않았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다. 누가 노년의 삶에 ‘믿음직한 평생 동행’이 되어줄까. 그게 바로 연금이다.
일부 대중매체와 전문가들은 ‘피할 수 없는 재앙, 고령화 지진, 인구의 시학폭탄, 잿빛 새벽’ 등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고령사회의 위험을 부각시킨다. 사회가 고령화되면 부담만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금제도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다. “월급에서 강제로 떼 가는 보험료는 아까울 뿐이고, 연금이 나오더라도 그것만으로 풍족하게 생활할 수 없다”고 비난한다. 또 “노인들만 넘쳐나는 세상에서 연금제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고, 세대갈등을 유발하여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말 연금제도는 부담만 안겨주는 쓸모없는 제도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주위의 연금 받는 노년들을 보라. 지금 당장 그들에게 연금이 끊긴다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들에겐 연금이 효자 서넛보다 낫다. 어느 자식이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줄 수 있겠는가. 노년의 연금은 생명의 돈이다.
그리고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믿어야 한다. 연금제도의 역사가 오래된 사회보장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라. 그들은 결코 연금제도가 붕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행정학 박사/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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