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서 中과 연 끊어라···‘美 엄포’에 대응책은 딱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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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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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입력 2020.07.11 이승호 기자
무려 14개다.

[사진 셔터스톡]
미국이 중국으로 수출을 규제하는 분야 개수다. 나열해 보면 이렇다.
「바이오, 인공지능 및 머신러닝, 위치항법기술,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 첨단컴퓨팅, 데이터 분석, 양자 정보 및 양자 센싱, 물류 기술, 3D프린팅, 로봇공학,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극초음속학, 첨단신소재, 첨단감시기술. 」
새 먹거리로 주목받는 기술은 다 포함됐다. 미국도 숨기지 않는다. 규제 근거인 수출통제개혁법(ECRA)에선 14개 규제 분야를 ‘신흥기술과 기초기반 기술’로 규정했다. 법은 2018년 통과됐다.
대외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공개한 ‘첨단 기술을 둘러싼 미·중 간 패권 경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4개 분야에선 중국 수출을 철저히 관리한다. 말이 관리지 사실상 금지다.

[자료 : KIEP]
법을 보면 그렇다. 미국 안보 및 국익을 해칠 중국 회사를 수출통제기업 리스트(Entity List)에 올린다. 이들 기업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미 당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 허가 없이 중국에 수출하면 그 업체는 바로 미 상무부 금지고객리스트에 오른다. 이러면 미국 기업과의 거래 또는 미국 기술 사용이 막힌다.
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 외에 중국인과의 공동연구도 금지했다. 사람에 의한 기술 이전도 대중 수출로 간주하는 거다.
「"우리와 거래하려면 첨단 기술에선 중국과 연을 끊어라."」

[사진 셔터스톡]
미국은 전 세계에 엄포를 놓은 셈이다.
이유가 있다. KIEP 보고서를 보자. 미국은 요즘 첨단 기술은 민군겸용(民軍兼用)이란 점을 우려한다. 과거엔 핵기술 등 일부 군용 기술만 안보 문제와 연결됐으나 최근엔 모든 분야의 첨단 기술이 안보에 직결된다는 거다. 5G, AI, 빅데이터, 로봇, 항공 우주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중국이 부상한다.

[자료 : KIEP]
발전 속도가 무섭다. KIEP는 국가별 기술혁신 생산성을 추정했다. 연구개발(R&D) 인력과 R&D 투자 금액 대비 국제특허 실적으로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2014년 하반기에 미국을 추월했다. 같은 수준의 지출을 해도 신기술을 더 많이 확보한다는 말이다.
걱정은 최근 더 커졌다. 동영상 공유 앱 틱톡을 볼 필요가 있다. 틱톡은 중국 기술 2.0을 보여주는 사례다. 틱톡을 만든 바이트댄스는 기존 중국 업체와 다르다. 바이두, 위챗, 알리바바 등은 미 실리콘밸리를 모방해 컸다. 구글, 왓츠앱, 아마존을 따라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틱톡은 독창적 모델로 글로벌에서 인기다. 미국의 월간 틱톡 활성 사용자는 2700만 명이다. 절반은 16~24세다.

[로이터=연합뉴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가 “미국인이 처음으로 중국 SNS 플랫폼의 영향을 받는 세상”이라고 표현할까. 최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틱톡 제재는 국가 안보 문제"라며 "휴대폰 속 중국 앱을 바로잡을 것”이라며 틱톡에 선전포고를 할 정도다.
미국의 방어논리는 ‘불공정’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기술 개발 방식이 ‘반칙’이라는 거다. KIEP는 “미국은 중국이 암묵적 기술이전 강요, 정부 주도의 조직적인 해외 기업 인수합병, 불법적 보조금과 국영기업 이용한 해외투자, 해킹을 통한 영업 기밀과 기술·지적재산권 탈취를 벌이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한다.
그렇기에 지난해부터 화웨이를 ‘산업 스파이’로 규정하고 강력 제재에 나서는 거다. 얌전한 방법으론 말을 안 들으니 인정 사정 안 봐주고 중국을 찍어 누르겠다는 생각이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은 어떨까. 역시 포기 안 한다. KIEP는 “미국은 보조금이 공정한 경쟁을 왜곡한다며 중국에 철폐를 강요하지만, 중국은 응할 생각이 없다. 보조금 정책은 그동안 중국 경제 발전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더구나 부를 분배하는 것은 그동안 공산당 지도부가 권력을 잡은 원천이다. 때문에 중국으로선 보조금으로 미국이 걸고넘어지는 건 중국 핵심이익을 건드리는 거라 본다.
「"미국 말대로 하면 중국 경제는 발전하기 힘들다. 나아가 공산당 정권이 흔들린다"인 거다.」

[파이낸셜타임스 캡처]
KIEP의 향후 미·중 갈등 시나리오에서 ‘갈등 관계 장기화’가 상수인 이유다. ①갈등 중 부분적 협조 ②갈등 첨예화. 두 가지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우리다.

[중앙포토]
양자택일하라는 미·중 압박은 커질 거다. KIEP는 “기술이 해결책”이라 본다. 미·중 갈등 본질이 기술 패권인 만큼 우리가 이들보다 앞선 기술이 있으면 쉽게 뭐라 못한다는 거다.
사례가 있다. KIEP는 “일본은 화웨이 갈등에서 빠르게 미국 편에 섰지만, 중국이 보복하지 않았다”며 “신산업 개발을 위해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가 필수적이라 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도 경험했다. 화웨이가 최근 삼성전자에 러브콜을 보내지 않았던가.
문제는 앞으로다. KIEP는 “중국의 혁신 생산성은 현재 한국의 80% 수준이지만, 빠른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곧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안 터지는 길.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을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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