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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연탄배달 자원봉사자 ‘0’… 얼어버린 코로나 온정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2월 8일
  • 3분 분량

<조선일보>조유미 기자 허유진 기자 입력 2020.12.08


4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달동네 초입 도로변에 연탄이 어른 키 높이로 잔뜩 쌓여 있었다. 모두 1000장, 무게는 3.65t. 언덕 위로 펼쳐진 쪽방촌 10가구에 배달될 연탄들이다. 그걸 나를 ‘일꾼’은 달랑 7명, 모두 기부단체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직원들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자원봉사가 취소됐기 때문이다. 마스크 차림 직원들이 발열(發熱) 체크를 마친 뒤 등에 지게를 둘러멨다. 그러곤 서로의 지게에 한 장 3.65㎏짜리 연탄을 최다 12장(44㎏)까지 올려준 뒤 오르막을 걷기 시작했다. 한 직원이 “작년엔 자원봉사자까지 50여 명이 모여 왁자지껄했는데 올해는 썰렁하네요”라고 했다. 사람만 줄어든 게 아니다. 연탄은행 허기복(64) 목사는 “연탄 가구가 겨우내 한 달을 생활할 수 있는 최소 연탄 개수는 150장인데, 올해는 100장씩밖에 못 준다”고 했다.


지난 4일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직원들이 서울 노원구 상계동 달동네 쪽방촌 10가구에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달동네·쪽방촌의 연탄 가구(家口)는 올해 유난히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경기가 얼어붙고, 기부와 자원봉사자마저 발길을 끊은 탓이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올해 9~11월 전국 저소득 가구에 기부된 연탄 수는 71만7000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5만장) 대비 47.3% 줄었다. 같은 기간 봉사자 수도 4203명에서 2364명(43.7%)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날 기자는 연탄은행 직원들과 함께 보건용 마스크(KF94)를 쓰고 직접 연탄을 배달했다. 지게에 연탄 5장, 18㎏만 얹었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숨이 찼다. ‘왜 수레를 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골목으로 접어들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골목길은 성인 한 명이 지나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좁았다. 직원이 “이런 곳에서 돈을 주고 연탄 주문을 넣으면, 장당 800원짜리 연탄에 배달비가 붙어 값이 1200~1300원으로 올라간다”며 “그나마도 차가 들어올 수 없어 배달을 거부하는 업체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첫 배달 장소였던 꼭대기 집은, 거리로만 따지면 출발지에서 50여m였다. 하지만 가파른 오르막길과 층계가 고르지 않은 돌계단이 이어져, 20m도 가기 전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돌덩이가 곳곳에 깔린 평지를 걸을 때도 귀한 연탄이 지게에서 떨어질까 봐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었다.


쏟아진 땀으로 마스크가 10여 분 만에 축축해졌다. 마스크 안쪽 천이 땀으로 코에 달라붙어 숨쉬기가 더 어려웠다.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마스크를 올리느라 수시로 걸음도 멈췄다. 목장갑에 연탄재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장갑을 낀 채 마스크를 올리기도 어려웠다. 앞서가던 직원이 “이곳은 베테랑 직원들도 힘들어하는 ‘마의 구간’”이라며 “봉사자 몇 명만 더 있었어도 왕복 횟수가 줄어 이것보단 수월했을 텐데…”라고 했다.


본지 조유미 기자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달동네의 첫 연탄 배달 장소에 연탄 5장을 배달한 뒤 잠시 마스크를 벗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김지호 기자



두어 번을 왕복하다 결국 배달 개수를 4장으로 줄였다. 허 목사가 “연탄을 나르는 일 대신 배달 장소에 먼저 가 있다가 연탄을 내리고 정렬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반복해서 10여 장을 내리자 팔이 후들거렸고, 연탄이 깨질까 봐 한 장을 내릴 때마다 주저앉아 정리해야 했다.


연탄을 배달받은 집주인들의 얼굴은 보기가 어려웠다. 대신 마당 간이 식탁에 구운 고구마와 따뜻한 차가 올려져 있었다. 예년 같았으면 직접 집 앞으로 나와 봉사자의 손에 쥐여줬겠지만, 주민 대부분이 코로나 고위험군인 고령층이다 보니 나올 수 없어 내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10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는 주민 박모(74)씨는 “작년에는 집집이 회비를 걷어서 직접 간식을 나눠줬지만 올해는 그럴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연탄 부족으로 인한 고충을 호소했다. 이모(76)씨는 “하루 5~6장씩 때던 연탄을 2~3장으로 줄였다”며 “아들이 자는 방에만 불을 넣는다”고 했다. 이씨의 50대 아들은 신부전증을 앓는다. 연탄 1장은 4시간 정도 탄다. 그마저도 방 안에 온기가 퍼질 정도가 되려면 한 번에 최소 3장은 태워야 한다. 그걸 아들 방에만 다 넣는다는 것이었다. 이웃집 강모(88)씨는 “견디다 못해 다른 집에서 연탄을 한두 장씩 얻어다 쓴다”고 했다.


올겨울이 힘든 건 다른 나눔 단체도 마찬가지다. ‘밥퍼나눔운동본부’ 관계자는 “봉사자 수가 4분의 1로 줄어 직원 10명이 매일 도시락 500~600명분을 포장한다”며 “하루 급식비만 300만원이 드는데 후원금도 예년 대비 70%로 줄었다”고 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매년 12월 시작하는 ‘희망나눔 캠페인’의 올해 목표액을 3500억원으로 작년(4257억원)보다 18% 줄였다. 구세군 모금 활동에 참여하는 서울 지역 자원봉사자 수도 올해 352명으로 작년(824명) 대비 50% 이상 줄었다.

조유미 기자 조선일보 조유미 기자입니다. 허유진 기자 사회부 기동취재팀 허유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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