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신천지·태극기 탓도 못한다, 사라진 K방역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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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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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입력 2020.12.15 오현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 확산과 방역 강화로 내수와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의 거시 경제가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지난주 대비 8%포인트 상승해 취임 후 최저치를 벗어났다. 주말 사이 수도권 교회 중심으로 코로나19(신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방역 성공 여부에 관심과 기대가 실린 결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8월 21일 발표한 8월 3주(18~20일) 여론조사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직전 조사(8월 11~13일)에서 취임 후 최저치(39%)였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긍정평가 39%→47%, 부정평가 53%→44%로 반등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8·15 집회 개최를 강행하고, 일일 확진자 수가 200명대로 치솟은 점이 지지율 반등의 원인으로 꼽혔다. 당시 여권에선 “흐트러짐 없는 ‘K-방역’이 지지율의 버팀목”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근은 달랐다. 지난주 조사(12월 8~10일)에서 문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38%)는 최저치를 경신했고, 부정평가(54%)도 최고치였다. 긍정평가 이유로 ‘코로나19 대처’ 항목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2주만에 35%→27%→25%로 추락했다. 확진자 급증과 함께 ‘K-방역’의 지지율 마법도 사라진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영업자 분노 폭발 민심 이반이 가장 심한 계층은 자영업자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자영업자층의 부정평가 비율은 54%→62%로 60%대를 돌파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자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는 평가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 전쟁에 왜 자영업자만 일방적 총알받이가 되나. 대출원리금·임대료 같이 멈춰야 한다”는 청원(지난 7일)엔 1주일간 14만명이 동의했다. 필라테스센터 원장으로 자신을 소개한 또 다른 청원인은 “한 달 평균 유지 관리비만 600만원이 넘는다. 체육시설업자들은 다 폐업이라도 하라는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마녀사냥' 불가능한 다발성 감염

광복절 집회 직후인 지난 8월 17일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담임목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구급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특정 보수단체가 시발점이 된 당시와 달리, 원인이 되는 특정 집단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이번 3차 대유행의 특징으로 꼽힌다. 뉴스1
이번 3차 대유행은 뚜렷한 거점이 없다는 게 특징으로 꼽힌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4일 “몇 개의 감염원을 통한 집단발병이 아니라, 10개월 이상 누적된 지역사회 무증상·경증 감염자가 감염원으로 작용해 1차와 2차 유행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과거 코로나19 유행은 특정 거점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1차 유행(2월)은 신천지 교회와 대구 지역이, 5월 소규모 유행은 이태원 클럽이, 2차 유행(8월)은 도심 집회와 일부 교회가 시발점으로 꼽혔다. 여권은 이때마다 관련 집단 혹은 공간을 코로나 발원지로 낙인찍으며 맹폭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다음날 광화문 집회에 대해 “국가방역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엔 동시다발적인 감염으로 방역 전선(戰線) 설정이 용이하지 않다.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 조치를 숙고하는 과정에서 확산세가 빨라진 것 아니냐”라며 “결국 방역 성공, 실패의 책임이 온전히 정부로 향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닷새전 文 "긴 터널의 끝"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코로나19 수도권 방역 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이날 문 대통령은 '터널의 끝'이란 표현을 세 차례에 걸쳐 사용했으나, 결과적으로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해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식 사과해야 햇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이 최근 낙관적인 인식을 표명한 것도 여권 입장에선 뼈 아픈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수도권 방역 긴급 회의에서 “긴 터널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계약한 4400만명분의 해외 백신 물량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이후 확진자가 급격히 늘었다. 결국 문 대통령은 12일 “코로나 상황을 조속히 안정시키지 못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사과했다.
보수야권은 문 대통령을 정면 겨냥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가의 정책이란 신뢰를 바탕으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데, 문 대통령은 일주일을 예견 못 하는 발언을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는데, 지금 지옥문이 열리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했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 ‘K-방역’은 국민 희생과 의료진 헌신으로 이뤄온 것”이라며 “이를 정부의 성과로 포장한 후유증이 뒤늦게 불거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이번엔 신천지·태극기 탓도 못한다, 사라진 K방역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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