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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미국 시민들의 위대한 거부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1월 6일
  • 2분 분량

<조선일보>윤평중 교수 입력 2020.11.06


최종 판정 늦어지는 美 대선 바이든 浮上은 민주주의의 힘 깨어있는 시민이 투표로 저항 다원주의·보편주의 다시 세워 선출된 정권이 합법성 탈 쓰고 민주주의 무너뜨릴 수 없어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와 개표 제도의 복잡성과 초박빙 승부 때문에 최종 판정이 늦어지고 있지만 바이든 후보 승리가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대(大)혼돈에 빠질 수도 있다. 우편투표를 한 유권자가 2016년 대선의 다섯 배인 6520여만명에 이르는 데다 주마다 우편투표를 유효로 인정하는 기한이 다르다. 우편투표 결과로 승패가 바뀔 경합 주에선 소송전이 진행 중이다. 개표 초반 ‘사실상의 승리’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행을 불사하겠다고 한다. 보수 성향인 에이미 배럿 대법관 선임을 강행한 것도 그 대비였다.


‘정치의 사법화’가 현실이 되면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 전개된다. 미국 민주주의 최대 위기다.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가 겨룬 2000년 대선도 연방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고어가 승복해 파국을 피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 적대 구조의 심화는 민주적 승복의 규범을 무너트렸다. 20년 전엔 상상조차 힘들었던 증오와 적대로 쪼개진 두 진영이 생사를 걸고 다툰다. 대선 과정의 혼미 자체가 미국 민주주의 파국의 조짐이다. 트럼프는 지난 4년간 미국 민주주의 규범을 파괴하며 폭주해왔다. 250년간 힘겹게 쌓아 올린 세계사 최초의 민주공화정이 통치 불가능성의 나락으로 치달았다. 트럼프 재선을 막은 이번 대선이 ‘세기의 선거’인 이유다.


투표일인 지난 3일 미국 메릴랜드주 오윙스의 한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AFP 연합뉴스



약체 바이든을 내세우고도 민주당이 승리한 배경엔 트럼프의 코로나 대응 실패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임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은 3명(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조지 H W 부시)뿐이다. 코로나 사태 직전까진 실물경제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현직 대통령 효과가 불발된 결정적 요인은 따로 있다.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무너트린 트럼프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 최대 요인이다. 정의와 다원주의를 부수고 정직성과 신뢰를 비웃으며 인종차별과 폭력을 부추긴 트럼프에 대항한 미국 시민들의 가치 투쟁이 바이든의 승리를 만들었다.


트럼프는 좌충우돌 행보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해체해 제국 미국의 쇠락을 재촉했는데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미국인 자신들이다. ‘위대한 미국 만들기’와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폭력을 선동하고 선거 불복을 외친 현직 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대중의 존재가 경악스럽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민주주의를 합법적으로 전복한 ‘선출된 독재자’ 트럼프에게 권력을 넘긴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태다. 유사(類似) 독재자를 추종해 자유로부터 도피한 이들이 민주 사회의 규범을 집단적으로 포기했다.


21세기 대중 독재의 무능한 코로나 대처가 인륜적 참사를 불렀어도 초(超)접전으로 일관한 대선은 미국 정치의 참담한 퇴락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깨어있는 미국 시민들은 위대한 거부(拒否)를 행동에 옮겼다. 트럼프의 적대 정치가 미국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로 추락시키는 걸 국민이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 투쟁의 빛나는 승리야말로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교훈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스스로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빈 공간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 주어져 있는 상황에서 역사를 만들어간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가 붕괴시킨 미국적 가치의 핵심인 민주적 다원주의와 보편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존중함으로써 진정성의 사회 윤리를 정초해야 한다. 거대한 문명사적 도전이자 정치철학적 소명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과 사회적 양식에 의존한다. 미국의 분열을 치유하고 국제사회에서 손상된 리더십을 복원하는 과업은 그런 정신적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 미국 문명의 최대 과제인 중국 문제도 정치 윤리와 시민 도덕의 보편적 토대가 전제되어야 세계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어 풀어갈 수 있다.


위기 극복의 미명 아래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탈민주주의가 미국과 전(全) 세계를 강타하였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이 합법성의 외피를 쓰고 다수결 절차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나라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권력이 지지자들의 폭력을 부추겨 정치적 경쟁자들을 적대시하고 자유와 시민권을 억압한다. 그러나 혁명과 개혁을 빙자해 민주주의를 축소한 길 앞엔 민주주의의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오직 더 많은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혼란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길 바란다. 미국 시민 정신의 위대한 승리를 함께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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