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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했던 낯선 땅··· 쥐·도마뱀이 설쳐도 이겨냈다”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2월 30일
  • 2분 분량

<조선일보>허윤희 기자 입력 2020.12.30


한국문화재재단 국제협력단 동남아 유적 보존·복원기 담은 ‘난생처음 떠나는 문화···' 출간 “뎅기열 걸려 머리카락 빠지기도”


동남아 3개국에서 문화유산 ODA 사업을 담당하는 연구원 18인이 코로나 덕(?)에 지난 4월 처음으로 서울 강남 사무실에 모였다. /한국문화재재단



“미얀마팀 항공편 좌석 확보했습니다! 이 비행기가 한국 가는 마지막 비행기라고 합니다.”


“라오스 정부에서 갑자기 록다운(봉쇄령) 일정을 당겼습니다. 현장 급히 마무리하고 우선 비엔티안으로 가겠습니다.”


지난 3월 말 한국문화재재단 국제협력단 단체 대화방에 불이 났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차 동남아시아 3국에 흩어진 연구원들이 다급하게 각국 사정을 알려왔다. 결론은 ‘모든 현장 긴급 철수’. 우여곡절 끝에 귀국한 이들은 자가 격리를 마치고 서울 강남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2012년 국제협력단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전 직원이 한 공간에 모인 것이다.


한국이 복원하는 '해외 문화재 1호'인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해체 후 전경. /한국문화재재단



의도치 않은 ‘동거’는 뜻밖의 수확을 냈다. 동남아 ODA 담당 연구원 18명이 함께 쓴 ‘난생처음 떠나는 문화유산 ODA 여행’이 지난주 출간됐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낯선 땅에서 유적을 보존·복원하며 흘린 생생한 땀의 기록이다. 진옥섭 재단 이사장은 “1348년 페스트를 피해 피난한 10인의 100가지 이야기를 담은 ‘데카메론’을 패러디해, 코로나로 철수한 연구원들의 100개 에피소드에 ‘디카’로 찍은 사진을 싣는다고 ‘디카메론’이라 가제를 정했다”고 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2013년 라오스 참파삭 문화경관 내 왓푸 사원과 고대 주거지 보존 복원 사업을 시작으로 문화유산 ODA에 뛰어들었다. 180㎝ 장신의 로맨티스트 전범환 ODA 사업팀장을 필두로 18인의 전문가들이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코끼리 테라스 복원, 미얀마 바간 유적 파야똔주 사원 벽화 보존 처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복원 현장에서 작업 중인 모습. 오른쪽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백경환 소장. /한국문화재재단



8년째 라오스 현장을 이끌고 있는 백경환 소장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오후 5시면 깜깜해졌고, 석재를 연마할 도구 하나 없을 정도로 처음 맞닥뜨린 현장은 열악했다”고 했다. 박민선 라오스 건축 담당 연구원은 “현장사무소 큰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쥐와 도마뱀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프린터에서 도마뱀의 흔적이 종이에 찍혀 나오고, 에어컨 바람이 나오질 않아 사람을 불렀더니 쥐가 실외기를 갉아서 생긴 문제였다. ‘앙코르의 남자’ 박동희 연구원은 “캄보디아에선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게 뎅기열”이라며 “병이 낫고 나서도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던” 일화를 들려준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 프레아피투 복원 현장에서 논의 중인 박동희 연구원(오른쪽). /한국문화재재단



낯선 땅, 달라진 기후에 적응해가면서 이들은 현지인 인부들과 가족이 됐다. 전유근 라오스 보존 담당 연구원은 그곳에서 돌병원 원장 ‘닥터 쩐’으로 불린다. “4년 동안 한국의 가족보다 이들과 더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스무 번의 마을 잔치, 여섯 번의 결혼식, 네 번의 장례식을 다녀왔고 네 명의 조카도 생겼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전기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다 소떼와 마주친 사연, ‘마피아(라오스식 육회)’를 주는 대로 받아 먹다가 병원 신세 진 이야기 등 팔팔 뛰는 현장 체험이 가득하다.


미얀마 바간 현장에서 전기 바이크를 타고 가다 소 떼를 만난 김동민 연구원. /한국문화재재단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복원 현장에서 현지 인부들과 함께 찍은 연구원들. 중앙의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전유근 연구원, 오른쪽 뒤 흰 옷 입고 모자 쓴 사람이 백경환 소장이다. /한국문화재재단



개성 강한 이들의 육성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현장에선 내가 바로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이다. 박동희 연구원은 “앙코르와트는 세계 17국이 유적 보수·복원에 참여하는 경연장”이라며 “전 세계 관객이 주시하고 있는 올림픽과 같다”고 했다. 백 소장은 “그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살려주고 있으니 한국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졌다”면서 “처음엔 ‘코리안 키즈’라 부르던 프랑스·이탈리아·인도 팀이 이제는 우리 시스템을 벤치마킹한다”고 했다.


'난생 처음 떠나는 문화유산 ODA 여행'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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