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용서 (나 자신을 용서하기)
- senior6040
- 2020년 8월 15일
- 2분 분량
[애틀랜타 중앙일보]발행 2020/08/14

용서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 프레드 러스킨에 의하면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를 강조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도 인간이기에 잘못을 저지른다.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꾼다. 그리고▶나의 잘못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그는 우리 자신을 용서할 네 개의 부문을 제시한다. ▶자신이 꿈꾸었던 일을 실천 못 한 부문 ▶자신이나 가족이나 이웃을 향해 꼭 해야 하는 일이나 의무를 못한 부문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다친 일 ▶나쁜 술버릇, 마약 중독, 도박 등 자신을 해치는 일 등이다.
세상에 알려지면 손가락질당하고 사랑받을 수 없을까 봐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 비밀스러운 죄와 잘못을 꼭꼭 숨기고 잊고 살아도,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이 숨긴 그늘 등을 보면 예리하게 비판하는 행동, 투사라는 형식으로 노출된다고 한다. 숨겼던 그늘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그것을 내 것으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영적인 성숙으로 인도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린 악마와 싸우고 화합하고 그늘에 숨긴 것들과 대면해야 한다고 칼 융을 비롯한 많은 학자가 말한다.
한 남자아이가 1938년 2월에 시골에서 태어났다. 3살 때 엄마가 가출했다. 남편의 폭력 때문이었다. 술버릇에 생업 기술이 없어 막노동하는 그 애 아버지는 3살 된 아들을 목노방에 두고 돈을 벌러 갔다. 병든 아이의 신음이 귀찮아 목노방에 같이 있던 노인이 눈이 하얀 마당으로 애를 던졌다. 애는 죽지 않고 살았지만 어떻게 살아났는지 그 자신도 모른다. 아이가 없는 집에 그 아이가 주어졌다. 그의 아버지가 자식을 찾으러 왔다. 그의 아버지가 잘못해서 남에게 얻어맞는 옆에서 나쁜 놈의 새끼라고 애들이 그 아이에게 돌을 던졌다. 먹을 것 없는 보릿고개 때 술지게미를 얻어먹고 취해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나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분을 못 했다. 때 묻고 냄새 나는 옷, 그가 옆에 오면 냄새가 났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밤에 오줌을 싸는 자신이 부끄럽고 미웠다. 많이 싸웠다. 싸우는 상대의 형이나 누나가 패거리가 되면 더 억울했고, 상대의 엄마가 싸운 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며 저런 애와는 상종하지도 말라고 할 때, 그 애는 싸우다 얻어맞은 것보다 더 서러웠다.
그가 성년이 되어 술을 마시고 송장처럼 뻗어버리는 일이 번번이 생겼다. 나쁜 술버릇 고쳐보려 노력할 때, 그의 속 깊은 그늘에 이무기, 용이 못된 구렁이가 살고 있다고 그는 느꼈다. 숨어 사는 이무기가 그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술을 퍼마시고쓰러지게 한다고 느꼈고 여의주를 얻는 방법이 무척 궁금했다.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 아이의 이야기는 부끄러운 나의 이야기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해석해본다.
어려서부터 살아남으려 스스로 노력해야 했다. 기댈 언덕도 보호막도 없어 맨주먹으로 노력하는 버릇이 나를 살렸다. 학교 교사가 되면 살 것 같아 노력하니 교사가 되었다. 새로 생긴 대학원만 마치면 교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하기에 노력하니 석사학위를 했다. 교수가 되려면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해야 한다기에 500불 가지고 미국에 와서 박사학위하고, 미국에서 교수가 되고 싶어 찾으니 자리가 났다.
돌아보니 어려서부터 작은 것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경험들이 나를 인도했다. 그렇게 해석하고 보니, 불운과 저주 같은 어린 시절의 운명이 나의 연단이며 축복으로 변하고 있다.
어려서 받은 많은 상처를 치유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찌그러진 내 표정부터 고쳐야 했다. 대인관계에서도 많이 배워야 했다. 술 마시고 송장처럼 뻗는 병도 고쳐야 했다. 책들을 많이 읽었다. 허버트 밴슨, 스코트 팩, 데이비드 호킨스, 프레드 러스킨 등의 책들을 읽고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도 치유과정에 있다. 그러는 과정에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고맙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만약 어느 누가 그 아이와 같은 유전 형질을 가지고,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시기에 태어나 자랐다면, 그 아이와 똑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유전자를 받아 태어나고, 태어난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고, 그 누구도 유전자나 태어날 시대나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와 나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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