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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돌고 나니] 치매 걸린 장인 만나러 간 노숙자 사위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7월 17일
  • 2분 분량

조선일보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입력 2020.07.17


/일러스트=이철원



산중에 장대비가 쏟아진다. 굵은 빗방울은 비닐하우스를 두드리고, 몰아치는 바람은 빗방울 교향악 연주를 한다. 칠흑 같은 밤하늘 깊은 계곡은 한순간 창조주의 장엄한 콘서트 홀이 된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가슴은 생기를 얻고, 죽어가던 뭇 생명은 소리 없이 웃음 짓는다. 산중에 한 달 정도 지속되던 가뭄은 초보 농군에겐 감당 못할 고난이다. 비탈밭 농지는 넓은데, 관수 장치도 없다. 씨앗마저도 가뭄이 오니 반은 싹이 나지도 않았다. 공동체 방문객들까지 나서서 물을 주나, 몸살을 앓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처지에 생태 유기농을 한다고 덤비니, 마을 사람들이 혀를 찬다. 500평 감자밭은 잡풀밭이 되고, 늦게 심은 콩밭마저 자라나는 풀에 주눅이 든다. 간단히 제초제 뿌렸으면 끝났을 것을! 하지만 생태적 신앙 가치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니, 믿음으로 벽을 넘을 수밖에 없다. 이런 처지에 쏟아진 장맛비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총이다. 대자연의 힘은 여전히 위대하다. 창조주의 은총 없이 피조물이 어찌 살아갈 수 있으랴.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자연의 일부요, 그 무대 위에서 잠시 지나는 객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일깨운다!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가 제대로 모이지 못한다. 항공사, 여행사, 백화점 못지않게 충격에 빠졌다. 현장 예배가 허용되었다 하나 말이 아니다. 교회 식당마저 문을 닫았다. 거리 식당과 관공서 식당은 돼도 교회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노숙인들 돕기는 절망이다. 우리가 하던 노숙인 예배는 물론이고, 노숙인 대학, 집단 상담, 알코올중독 상담,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 자립 자활을 위한 농사 등등 올스톱이다. 얼마 전 몇 달 만에 마스크 쓰고 점심 대용식을 준비해서 서울역에 나갔다. 우리 정책은 서울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역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이지 못하니 별수가 없었다. 그런데 서울역에 가보니, 이전과 달리 가져간 것이 턱없이 부족해, 줄을 섰던 많은 분이 그냥 돌아서야 했다. 왜 주다 마느냐고 험악한 표정들도 있었다. 너무도 미안하여, 그 후엔 양을 늘려서 찾아갔다. 처음 나간 날 광장 저쪽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목사님!" 하며 달려왔다. 마음이 뭉클했다. 목사라는 이름이 새삼 감사하였다. 그런데 그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 노숙인 찬양대원이었는데 이젠 완전 '거지꼴'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오는 날엔 씻고 왔는데, 그럴 일이 없으니 엉망이 된 것이다. 나는 결단했다. 얼마 후, 코로나 예방 수칙을 따라 체크를 하고, '자립 자활 블레싱'을 진행했다. 형제들을 모아, 서울역을 떠나 평창 산마루공동체에서 씻고, 낮에는 500평 감자밭에서 풀을 뽑으며 땀을 흘렸다. 새벽엔 맑은 공기 속에서 묵상하고, 밤엔 속마음을 트는 시간을 가졌다.


한 형제는 집 나온 지 5년 만에 "마누라를 만나고 왔다"고 한다. 장인한테 치매가 왔는데, 사위가 보고 싶다며 우셔서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정신 더 차리고 나중에 오라"고 했단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손뼉을 힘차게 쳤다. 교우들은 며칠간 이 형제들을 매끼 고랭지 유기농 야채에 불고기, 삼계탕, 돼지 불백과 수박, 참외 여름 과일로 정성껏 대접했다. 그리고 10만원씩 봉사비로 드렸다. 이번에 풀 뽑은 감자밭은 '가을 블레싱' 프로그램에 쓰인다. 서울역 인근 독거 노인 쪽방촌 사람들을 초대하


여 축복하는 일이다. 공동체에 와서 문화 나들이를 하고, 씻은 후 속옷을 드려 갈아입게 하고, 이야기로 응어리진 속마음 트기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정성껏 식사 대접을 한다. 그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 산 안개 속에서 감자를 "캐 갈 수 있을 만큼 실컷 캐 가기"를 한다. 지난해에는 한 번 계획했으나, 반응이 좋아 두 번 했다. 올해는 여러 번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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