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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100] 치매의 또 다른 말 '조금씩 천천히 안녕'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5월 28일
  • 2분 분량

<브릿지경제>입력 2020-05-27


[Culture Board]'행복 목욕탕'을 연출한 나카노 료타 감독의 차기작

제143회 나오키상 수상에 빛나는 나카지마 교코 작가의 동명 소설 영화화

가족의 이별 담담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내


극중 이혼남을 사랑하는 후미는 어린딸과 전처에게 돌아간 남친을 원망하며 “언제나 가족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역시 돌아갈 가족이 있기에 그 슬픔을 견딘다.(사진제공=디스테이션)


100세 시대에 치매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일까. 혹자는 형별, 관계의 깨짐 등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지 모른다. 27일 개봉한 일본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치매=롱 굿바이’라고 말한다. 긴 시간 이별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과정이라는 것. 물론 주변 사람들이 쉽기만 한 건 아니다. 정정했던 아버지는 점차 아기가 되어 가고 평생 희생한 어머니는 병간호에 체력이 달린다. 이 영화는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라 불리는 나카노 료타가 연출을 맡았다. 전작 ‘행복 목욕탕’을 통해 가족 사이의 희생과 화해를 다뤘던 그는 ‘조금씩, 천천히 안녕’을 통해 또다시 장기를 발휘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고 불리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0년의 시간을 7년으로 압축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좀더 단단하게 추렸다. 35년을 한 집에서 산 아버지는 매번 “갈 데가 있다”며 길을 나선다.

 

27일 개봉한 영화 ‘조금씩,천천히 안녕’이 치매에 대한 따듯한 울림을 전한다.(사진제공=디스테이션)


기억은 점차 잃어가고 결국 딸들은 몸에 GPS를 단다. 평생을 조용히 헌신해 왔던 어머니는 “아버지도 남자인데 자존심이 있다”며 반대하는 건 지극히 일본 영화답다. 

기성세대들이 교육받아온 여성의 희생, 조신함이 남아있는 부모 세대와 나름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식들의 균열은 두 딸의 모습에 투영된다.

큰 딸 마리는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남편을 따라 타지생활을 견디고 있다. 사춘기인 아들은 엇나가기만 하고 마리의 영어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애써 잘 지내고 있음을 장녀답게 삭이는 모습을 보면 동생 후미의 성장통에 시선이 간다. 아버지처럼 교편을 잡길 바랐던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요리사의 길을 가고 있는 후미에게 일과 사랑은 언제나 버겁다. 

의외인 건 타지에 있는 언니와 툭하면 사고치는 부모를 보살펴야 하는 동생의 불협화음이 이 영화에는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극적인 갈등보다 스며들듯 가족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평생을 엄하게 규칙만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서툰 위로가 이 가족을 대변한다. 아기가 되어 가는 순간 무심코 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태평양 건너의 손자와 울음을 참고 현실을 견디는 후미를, 그리고 마리의 관계를 다독인다. 거창한 말도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렴” “마음에 안 들면 회유해봐” 등 뜬금 없는 한마디. 늙고 병들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으로 모니터 넘어 손자에게 보내는 손인사가 전부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동양권 배우들이 보여주는 현실적인 연기가 몰입도를 더한다. 파란 눈의 금발 혹은 아랍이나 멕시코 배우들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연기를 했다면 그것이 차별적인 발언이라도 분명이 이질적일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장유유서’가 익숙한 한국 관객들의 공감도를 높인다. 교장으로 은퇴한 아버지는 기억이 희미해져도 한자만큼은 달인 수준이다.  


26일 개봉한 영화 ‘조금씩,천천히 안녕’(사진제공=디스테이션)


어머니는 또 어떤가. 의사에게 생명유지 장치를 뗄 것인지 달 것인지를 제의받고 고민하는 딸들에게 “내가 그 정도 결정도 안 했을 것 같으냐”며 일갈한다. 위기의 순간 발휘되는 강인한 모성애는 전인류의 공통점이다. 

모든 게 서툴지만 진심인 후미 역할은 국내에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아오이 유우, 큰 딸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다케우치 유코가 맡아 실제 자매같은 호흡을 보여준다. 자매의 부모를 연기한 마츠바라 치에코와 야마자키 츠토무는 일본 연예계에서 김혜자와 이순재 같은 존재다. 연륜과 연기력 또한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만큼 실제 부부의 연기가 경이롭다. 영화의 엔딩은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난다. 하지만 검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손자의 애도를 비추면서 살아남은 자의 무게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혜를 깨닫게 만든다. 다소 긴 127분의 러닝타임이 유일한 흠이지만 그 마저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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