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반한 순두부찌개 뒤엔, 엄마의 음식 장인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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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8월 29일
- 3분 분량
[중앙선데이]입력 2020.08.29
‘북창동 순두부’ 창립자 고 이희숙 대표

북창동 순두부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이희숙 대표의 생전 모습. 김상진 기자
2011년 여름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창동 순두부’는 날개를 달고 날기 시작했다. 이희숙 대표는 성공한 CEO였다. 인터뷰는 활기 넘치게 진행됐다. 그는 성공과 성취에 대한 뿌듯함이 가득했다. 앞날에 대한 자신과 희망도 넘쳤다. NYT, 부고 기사로 삶 재조명 매장마다 반찬 맛까지 표준화 푸짐한 밥상이라는 철학으로 한식 브랜드화 성공 신화 써 1996년 1호점, 17개까지 확장 비영리 단체 행사 20년간 후원 일시해고 직원에게 의료혜택도
그러던 중 한 질문에서 갑자기 인터뷰가 멈췄다. 평범한 물음이었다. “16년간 북창동 순두부를 이끌면서 언제가 가장 힘드셨어요?” 이 대표는 갑자기 입술을 앙다물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핑그르,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사업 시작할 때였어요. 아들 셋이 4학년, 6학년, 8학년이었어요.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 했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땀이 나요.”

북창동 순두부 주방 모습. 김상진 기자
사람들 기억은 다르다. 잘 아는 지인들 얘기다. “이 대표는 유능한 사업가죠. 늘 열정적이고, 활력이 넘쳤어요. 과감한 추진력이 놀라웠죠. 딱 한순간 아닐 때가 있어요. 아이들과 통화하는 시간이죠. 그때는 목소리 톤부터 달라지요.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의 음성이 됐죠.” 뉴욕타임스(NYT)가 북창동 순두부의 창립자 고 이희숙 대표를 애도하는 부고 기사를 27일 게재하며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난소암 투병 끝에 지난달 17일 61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 대표의 이야기를 NYT가 한달여 만에 꺼내놓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대표가 미국 문화에 뿌리고 일궈 놓은 지분이 있어서다. NYT는 “이희숙 대표의 요리는 그 자체가 미국의 문화현상과 같은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불고기나 비빔밥을 대표 한식으로 생각하겠지만, 미국에서 보는 입장은 다르다.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 있는 타인종에게 대표 한식을 꼽으라면 ‘순두부찌개’가 먼저다. 매콤한 음식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강렬한 순두부찌개를 맨 앞에 내놓은 이 대표의 탁월한 선택 덕이다. 음식비평가로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조나단 골드 역시 생전에 경쟁력이 있는 한식 메뉴로 순두부찌개 같은 찌개류를 꼽았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식품이나 외식 기업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한식 브랜드화에 성공한 게 바로 북창동 순부두다.

북창동 순두부 주방 모습. 김상진 기자
북창동 순두부는 한결같았다. 어느 계절, 어느 매장에 가도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칼칼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순두부찌개를 맛볼 수 있었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그리고 며칠 전 찾을 때도 한결같았다. 엄마가 방금 지은 것 같은 돌솥밥과 조개젓, 겉절이 김치와 오이지, 그리고 조기 한 마리는 정성스러운 한 상을 대접받는 느낌이다. 어떤 고객이든 기분 좋게 식당 문을 나설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 푸짐하고 정성 담긴 밥상을 차려 놓은 이가 이희숙 대표다. 이 대표는 1959년 6월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이 대표가 중학생일 때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생활 일선에 뛰어들었다. 1983년 이태로씨와 결혼한 그는 1989년 LA로 이주했다. 순두부 식당을 열겠다고 마음먹은 건 예배 후 아이들이 교회 건너편에 있는 순두부 식당에 가자고 조른 것이 계기가 됐다. ‘북창동 순두부’라는 명칭은 친척의 두부 음식점이 있던 서울 북창동에서 착안했다. 그렇게 1996년 4월 LA 한인타운의 한쪽에서 개점한 식당이 북창동 순두부 1호점이다. 이후 웨스턴, 윌셔, 가든그로브, 세리토스, 토렌스, 로랜하이츠, 부에나파크, 어바인 등 거의 1년에 한 곳씩 미국 서부에 지점을 열었다. 2008년엔 미국 동부로 확장을 시작했다. 뉴욕 맨해튼과 베이사이드, 뉴저지 포트리에 지점을 열었다. 12개 도시에 13개 직영점을 포함 17개의 매장에서 수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성공의 첫 번째 요소는 맛의 표준화였다. 지속해서 맛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모든 매장에서 같은 맛이 나도록 규격화했다. 순두부만이 아니다. 테이블에 올리는 김치에서 오이, 조개젓까지 모든 매장에서 표준화한 맛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2019년 11월 공연차 LA를 방문한 트로트 가수 송가인 일행과 점심을 함께하고 포즈를 취한 이희숙 대표(왼쪽 셋째). 김상진 기자
이 대표는 요식업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2011년에는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북창동 순부두’를 브랜드로 가정 조리용 제품을 출시했다. 상품화로 매장 손님 감소라는 리스크가 있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고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두부를 먹는 횟수를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이 대표는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엄마는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고르고 사기 위해 매일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는 사람이었다. 장남인 에디 이는 “어머니는 식탁에 올라가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 완벽해야 했다”고 말했다.
한인들에게 기억되는 이희숙 대표는 사업가만이 아니다. 그가 내놓은 푸짐한 식탁처럼 커뮤니티에도 넉넉하게 마음을 나누었던 후원자였다. 이 대표는 20년간 지역 비영리단체의 행사를 꾸준히 후원해왔다. NYT는 이 대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시해고된 직원들에게도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는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등 직원 복지에도 애를 썼다고 전했다.
이 대표의 부음을 전한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가와 버몬트에서 처음 시작하셨을 때 밤에 가서 청소했던 사람입니다. 항상 웃으면서 친절하셨던 분이셨는데, 안타깝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편안히 영면하시길 빕니다.’
유족으로는 남편 이태로 회장과 세 아들이 있다.
오수연 LA 중앙일보 기자 oh.sooyeo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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