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나옵니다" 도로 내몰린 폐지 줍는 노인들 [한기자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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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4월 27일
- 3분 분량
<아시아경제>최종수정2020.04.27
현행법상 손수레 차로 분류…폐지 줍는 노인들 안전대책 절실

서울 중구 한 도로에서 폐지 줍는 노인이 손수레에 고물 등을 싣고 차도를 지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차 지나가는 소리, 매연으로 더 피곤합니다." 최근 서울 중구 한 차도에서 만난 70대 노인 A 씨는 자기 몸집보다 2배는 더 되어 보이는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차도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그는 "위험한 것을 알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현행법(도로교통법 2조17호)은 손수레를 차로 분류한다. 차도가 아닌 보도로 다닐 경우 불법으로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된다. 유모차와 전동휠체어만 예외적으로 보도로 가는 것이 허용된다. 이렇다 보니 도로로 내몰린 폐지를 수집해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기도 한다. 국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섰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 그 사이 노인들은 아슬아슬 차를 피해 다니거나 매연 등에 노출,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지만, 그 과정에서 목숨까지 내 걸린 셈이다. A 씨는 "리어카를 끌고 도로로 나오면 당연히 위험하다"면서도 "그래도 알아서 먼저 비켜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차선 도로에서는 아예 한 쪽 차선을 막고 이동했다. 다행히 주변 차량은 없어 안전사고나 교통체증은 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차량이 튀어나와, A 씨 안전을 위협할지 모른다. A 씨는 "차 사고 나면 이 일을 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계속해야 한다"라고 짧게 말했다.

서울 중구 한 도로에서 폐지 줍는 노인이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고물 등을 싣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hsg@asiae.co.kr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또 다른 노인 B 씨는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폐지를 줍고 있었다. 버스는 물론 일반 차량이 B 씨 주변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으나, B 씨는 고물 줍기에 여념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통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인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폐지수집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인(65세 이상)은 3년 기준 (2015∼2017년) 서울에서만 21명에 달했다. 연도별 사망사고 통계를 보면 폐지수집을 하다 숨진 노인은 2015년 9명, 2016년 4명, 2017년 8명이다. 지역별로 보면 3년간 동대문구에서 3명, 종로구·용산구·광진구·성북구·금천구·관악구에서 각 2명의 노인이 폐지수집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폐지수집에 나섰다가 변을 당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월20일 오후 6시10분께 서울 관악구 봉천로 횡단보도에서 손수레에 폐지를 싣고 건너던 한 노인(사고 당시 85·여)은 인근을 지나던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또 같은 해 2월4일 오전 5시50분께 중구 퇴계로 충무아트홀 앞에서 폐지를 싣고 지나던 노인(사고 당시 82·여)은 신당사거리 인근을 오가던 택시에 치여 숨졌다. 이어 7월12일 오전 9시53분께 손수레를 끌고 폐지 수집하던 70대 노인은 동작구 상도로에서 후진하던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지난해 9월15일 한 70대 노인이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싣고 위태롭게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시민들도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30대 직장인 C 씨는 "평소 운전할 때 폐지를 가득 싣고 다니는 어르신들을 보는데, 마음이 불편하다"면서 "빨리 법이 좀 바뀌어서 그분들이 안전하게 다니셨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40대 직장인 D 씨는 "법이 문제라면 폐지 수집하는 노인들만 예외적으로 안전 대책이 없을까"라면서 "한시가 급한데 왜 이런 법은 빨리 개선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현재 국회에는 손수레가 인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이 지난 2017년 11월 발의됐지만, 손수레 규격 기준 등의 문제로 3년째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당시 국회에서는 "수레의 보도 통행을 허용할 경우 보행자의 불편을 유발하거나 경미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인 데 반해, 현재와 같이 원칙적으로 손수레를 차도로 통행하도록 하는 것은 자동차가 많은 도로에서의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은 물론, 손수레 사용자와 자동차 운전자 모두에게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견해가 있어 왔다"라면서 "손수레는 이 법에 따른 “차”에서 제외되도록 규정함으로써, 현행 규정의 현실 적합성을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법 개정 취지를 밝힌 바 있다. 한편 전문가는 예외 규칙 등을 마련해 폐지수집 노인들이 처한 교통사고 위험을 조속히 줄일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사회복지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 안전보호 취지에서 이 법을 개정 또는 다른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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