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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판사 전성시대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0월 6일
  • 2분 분량

<조선일보>정권현 논설위원 입력 2020.10.07


지난달 어느 법원에서 부장판사가 회식 도중 말다툼 끝에 16세 연하 배석판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가 사과했다. 그러나 배석판사는 그 사과를 다시 문제 삼아 부장판사를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부장이 다시 배석판사에게 머리를 깊이 숙였고, 배석판사가 고소를 취하했다.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다.



▶과거에는 합의부 판사 3명이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재판장 우배석 좌배석의 순서로 나란히 걸어다녔다. 이제 그런 광경은 보기 어렵다. 판사 100여 명이 검찰에 불려다닌 ‘적폐몰이’ 바람이 지나간 뒤 판사 사회에 ‘지시’라는 말이 사라졌다. ‘선후배 판사’라는 말을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배석판사가 재판장에게 ‘직접 판결문을 쓰라’고 대들고, 재판장에게 알리지 않고 ‘칼퇴근’을 해도 이를 나무랄 선배가 없다.


▶최근 판사 채용 시험에서 최대 로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 12명이 합격했다. 경력 5~7년 차로 한창 물이 오른 변호사들이다. 검사도 60명이 지원해 15명이 붙었다. 판사 전직 열풍이 불면서 ‘판시(判試)족’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판사 시험을 준비하는 변호사들은 “남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가장 많이 꼽았다. 수입은 비록 줄지만 ‘을’(乙)이 아닌 ‘갑’(甲)의 입장에 서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속내다. 판사가 되면 로펌 시절 달달 볶아대던 파트너(선임) 변호사가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한다.


▶어느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는 판사가 1위로 나왔다. 검사 37위, 변호사 74위와 비교된다. 법정에 서면 사건의 결론은 물론이고 재판 선고 날짜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판사 3000명 각각 왕이나 다름없다. 모임 상석은 판사들 차지인 경우가 많다. 이제 판사들이 일에 찌든 모습은 보기 어렵다. ‘퇴근길에 서류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간다’는 등의 이야기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많은 판사가 법원 주변 헬스장에서 건강을 관리하고 저녁 술자리도 갖는다.


▶판결 절차에서 실수를 하거나 오심(誤審)을 해도 판사들은 문책받지 않는다. 노정희 대법관처럼 법리를 잘못 적용해 하급심에서 다시 뒤집혀도 탓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선관위원장이 된다. 국민 참여 재판 확인 절차를 누락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열게 된 판사들도 징계받지 않을 것이다. 돈을 준 사람은 구속하고, 돈 받는 사람은 풀어주는 재판부도 예외는 아니다.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책임에서는 비켜 있는 유일한 직업이 판사다. 그러니 판사 전성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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