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전태일 50주기
- senior6040
- 2020년 11월 13일
- 2분 분량
<조선일보>박은호 논설위원 입력 2020.11.13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인근 ‘전태일 거리’에는 어른 발자국만 한 동판 수천여 개가 깔려 있다. ‘아름다운 청년’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 ‘노동 해방’ 같은 글귀가 동판마다 새겨져 있다. 50년 전 오늘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분신한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을 기리는 내용이다.

▶당시 평화시장엔 10대 초중반 여성 봉제공이 많았다. ‘타이밍’(각성제)을 먹고 졸음을 쫓으며 하루 15~16시간씩 재봉틀을 돌렸다. 전태일은 배 곯고 지친 어린 여공들의 ‘다정한 오빠’였다. 호주머니를 털어 풀빵을 사 여공들과 나눠 먹고 자기는 차비가 없어 집까지 2시간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갔다고 한다. 그 역시 사망 직전 “엄마, 배가 고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품고 분신할 정도로 근로기준법에 매달렸다. 당시 월 200시간 노동시간 법 규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면서는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고 한다. ‘대학생 친구’는 그의 분신 이틀 뒤 비로소 나타났다. 당시 서울대 법대생으로 노동운동을 하던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장례식장 인근 다방에서 모친 이소선 여사를 만났는데 첫마디가 ‘왜 이제야 나타나느냐’였다”고 했다.
▶9년 전 작고한 이소선 여사는 41세에 아들을 잃은 뒤 남은 41년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아들이 근로기준법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자 “기르던 머리카락을 잘라 책을 사줬다”고 한다. 동생 전순옥 전 민주당 의원은 영어 한마디 못하던 시절에 영국 유학을 가 오빠의 외침 그대로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란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이 그의 죽음 이후 본격화했다.
▶한국 노동계는 늘 ‘전태일 정신'을 외친다. 그러나 장 전 이사장은 “민노총에는 전태일 정신, 전태일 사상이 없다”고 한다. 전태일은 생전 많은 글을 남겼다.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라고 부르며 노동 환경 개선을 외쳤다. 장 전 이사장은 “전태일이 말한 ‘모든 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회사원이든 사업주든 모든 주체가 노동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찾고 사회 개혁을 하자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라고 했다. 전태일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10% 대기업 귀족 노조가 나머지 90%를 사실상 착취하는 요즘 세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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