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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재앙’인가, ‘천재적 제도’인가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1월 4일
  • 2분 분량

<조선일보>이동훈 논설위원 입력 2020.11.05


미국 대선 투표가 끝났지만 ‘진짜’ 선거는 12월 14일이다. 일반인 투표로 뽑힌 선거인단 538명이 투표하는 날이다. 선거인단 당선자(elector)들은 그날 출마한 주 수도에 모여 투표하고 결과를 워싱턴DC로 보낸다. 선거인단 중 딴마음을 먹고 당을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만 없지 않았다. 대선이 58번 치러지는 동안 165명 나왔다. 하지만 이들 때문에 결과가 뒤집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 선거인단을 향해 “마음을 바꿔달라”고 호소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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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제도는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만들어졌다. 각 주 대표들이 머리를 맞댔고 두 가지 합의에 이르렀다. 연방제 국가로서 각 주 나름의 통일된 의사를 대선에 제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각 주에서 단 1표라도 이기면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당시 뒷거래가 횡행하던 의회를 대선에서 배제하자는 공감대도 있었다. 넓은 국토, 열악한 교통과 통신 문제 때문에 전 국민 직접선거는 비현실적이기도 했다.


▶선거인단 제도는 각 주 간 절충의 산물이기도 했다. 북부에 비해 인구가 적었던 남부는 선거인단 제도를 적극 밀었다. 남부는 투표권 없는 흑인 노예 한 명을 5분의 3으로 계산해 선거인단을 덤으로 할당받았다. 지금도 가장 작은 주 주민이 큰 주 주민보다 4배 대표성을 지닌다. 실제 미국 대선은 공화, 민주당 세가 엇비슷한 4~5개 주의 승부로 갈라진다. 선거 운동도 사실상 이 몇 개 주에서만 이뤄진다. 민심의 대표성을 왜곡하고 복잡하기까지 한 18세기의 산물을 이제는 포기하자는 주장이 적지 않다.


▶전 국민 투표에서 이기고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패배한 경우는 지금까지 다섯 차례 있었는데 모두 민주당이 피해자였다. 21세기 들어 민주당은 앨 고어와 힐러리 클린턴으로 두 번이나 당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제도에 대한 전체적 찬반은 팽팽한데 지지 정당별로 갈라지는 이유다. 민주당 지지자 70%는 폐지하자고 한다. 하지만 공화당이 폐지에 반대하고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일이라 가능성은 낮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2년 “선거인단 제도는 민주주의 재앙”이라고 하다가, 자신이 승리한 2016년엔 “천재적 제도”라고 말을 바꿨다.


▶미국 민주주의의 명예로운 전통은 독특한 선거인단 제도에 있기보다 질서 있는 권력 이양에 있다. 전투가 끝나면 무기를 버리고 올리브 가지를 들었다. 패자의 감동적 승복 연설이 미국 민주주의를 지켜온 버팀목이다. 그런데 이단아 트럼프 등장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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