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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외국어 없는 ‘내로남불’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2월 22일
  • 2분 분량

<조선일보>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0.12.22


1980년대 후반 서울 집값이 무섭게 올랐다. 원성이 빗발치자 노태우 정권은 수도권에 주택 200만 호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 라디오에서 전화 연결된 청취자가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진행자가 “목돈이 생기면 뭘 하실 거냐?”고 묻자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집에 투자해야죠.”




▶영국 역사학자 폴 존슨은 저서 ‘지식인의 두 얼굴’에서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가도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게 인간 본성”이라고 갈파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를 꼽았다. 루소는 ‘에밀’에서 “주위의 나쁜 영향에서 아이를 보호해야 하며, 그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다”는 말로 부모의 양육 책임을 강조했다. 정작 자신은 다섯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 냉혈한이었다. 사람들이 비난하자 루소는 이런 변명을 했다. “집안일과 아이가 내는 소음으로 가득 찬 다락방에서 어떻게 일하는 데 필수적인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겠는가.”


▶'내로남불'이란 말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1987년 출간된 이문열 소설집 ‘구로 아리랑’에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하기사 지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 이 말을 한 정치인이 ‘스캔들’을 ‘불륜’으로 바꿔 사용한 게 ‘내로남불'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정치인도 성추행 논란을 빚은 뒤 “손녀 같고 딸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것”이라고 했다. 남이 하면 성추행이고 자신이 하면 ‘쓰다듬기'다.


▶교수신문이 올해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골랐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린다’는 뜻이다. 원래 ‘내로남불'을 골랐는데 거기에 맞는 한자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시타비'로 했다고 한다. 아시타비는 내로남불의 속뜻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내로남불'과 딱 들어맞는 외국어가 있는지 궁금하다. 재미 저술가 조화유씨는 “영어에 이중잣대(double standard)란 말이 비슷한데 내로남불 같은 말맛은 없다”고 설명한다.


▶내로남불이란 말이 이 정권만큼 많이 쓰인 때는 없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내로남불의 끝판왕으로 등장했다. ‘조로남불'이란 말까지 생겼다. 황당한 것은 이런 정권의 청와대 사무실마다 ‘춘풍추상’이란 액자가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남에겐 봄바람처럼, 나에겐 가을서리같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 하는 행동은 ‘내로남불'이다. 이러고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되레 눈을 부라리고 화를 낸다. 어떤 독특한 정신세계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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