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세계가 조마조마 ‘트럼프의 7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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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1월 11일
- 2분 분량
<조선일보>임민혁 논설위원 입력 2020.11.11
부시 미 대통령은 퇴임 직전 세계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해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본인이 속한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언론에서는 임기 말 권력 누수를 뜻하는 ‘레임덕’(절름발이 오리)을 넘어 ‘브로큰 덕’(다리 부러진 오리), ‘데드 덕’(죽은 오리)이라는 비유가 쏟아졌다. 사실상 지도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뜻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관심은 당선인에게 몰린다. 물러날 리더는 조용히 임기를 정리하는 게 미덕이다. 하지만 레임덕이든 브로큰 덕이든 현직은 현직이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다.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나기 전 측근 등 수백명을 사면했다. 2대 대통령인 애덤스는 다음 대통령 취임 전 수십명의 법관 인사를 했다. 클린턴은 결국 포기하긴 했지만 임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던 시점에 평양 방문이라는 이벤트를 계획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에스퍼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라고 한다. 권력 이양기 주요 각료 교체는 매우 이례적이지만,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가 이에 연연할 리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다. FBI 국장, CIA 국장,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 등도 보복성 해고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본인과 가족 기업에 대한 탈세 수사, 성폭행 등 각종 형사소송과 관련해 ‘백지 사면’을 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고도로 민감한 정보의 비밀 등급을 해제하거나 정보 출처를 공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남은 임기 중 이란 등을 겨냥해 군사작전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했다. 미국의 군 통수권자는 여전히 트럼프이고 핵단추도 그의 손에 있다. 그는 올 초 의회 승인도 받지 않은 채 드론 폭격으로 이란 군부 실세를 암살하기도 했다. 미국의 시스템이 ‘레임덕 대통령’의 막무가내 폭주를 제어해 주겠지만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돌이켜보면 트럼프의 4년은 예측 불허 사건의 연속이었다.
▶바이든 당선인 취임까지 남은 70일간은 ‘트럼프 리스크’의 시간이다. 웬만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해외 토픽으로 접하고 혀 한 번 차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벌이는 일은 미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 안보·경제 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 에스퍼 장관은 경질 전 인터뷰에서 이런 우려를 전하며 “신이여 도와주소서(God help us)”라고 했다. 전 세계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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