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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비서실장의 치아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1월 4일
  • 2분 분량

<조선일보>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0.11.04 03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투수 김광현은 서른두 살 젊은 나이인데도 수년 전 어금니에 임플란트를 했다. 하도 이를 악물고 던지다 보니, 어금니 손상이 왔다. 악물면 순간적으로 근력이 증가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임플란트 넣고 골프 비거리가 늘었다는 어르신이 많다. 하지만 세게 악물면 약 100㎏의 하중이 치아에 실려 미세 골절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요새는 권투, 럭비뿐만 아니라 타자들도 마우스가드를 낀다.



▶일본에서 늙은 쥐 가운데 어금니 있는 쥐와 없는 쥐로 나누어 미로 찾는 기억력 테스트 실험을 했다. 어금니가 있는 쥐는 시간이 좀 걸려도 미로를 찾아냈다. 반면 어금니 없는 쥐들은 미로 속을 방황하며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만 했다. 이 쥐들을 MRI로 찍어 보니,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뇌 속 ‘해마’가 쇠퇴해 있었다. 맞물린 어금니가 없으면 인지 기능도 떨어진다. ‘씹는 남자’는 한 발로 오래 서있기를 씹지 못하는 남성보다 평균 7초를 더 버틴다는 연구도 있다.


▶미화 1달러 지폐에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얼굴이 등장한다. 입을 다문 채 굳건한 의지의 표정이 담겨 있다. 그는 이빨이 썩어서 여러 개 날린 치아우식증 환자였다. 영국과 전쟁하면서 치통과도 싸워야 했다. 나중에는 치아 몇 개와 의치를 철사로 간신히 붙들어 매고 다녔다. 그걸 유지하려고 안면 근육을 긴장시켜 입술을 꽉 다물고 아래턱을 위로 붙였다. 그 상황이 독립에 대한 결연한 의지로 비친 건 아이러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치아를 여러 개 뺀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실장 등 예전 청와대 비서실장들이 치아 문제로 고생하는 징크스가 노 실장에게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과로와 스트레스는 잇몸 혈류량을 떨어뜨리고 면역력을 줄여서 치주염을 일으킨다. 침 분비량도 감소하여 세균 감염 단초가 된다. 이를 방치하면 치아 상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치과의사들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을 싫어한다. 실제로 치아가 부실하면 영양 부족으로 노쇠가 일찍 오고, 치매 위험이 커지고, 당뇨병도 악화된다. 이에 구강이 전신 건강 게이트(gate·입구)라고 말한다. 치아는 계속 쓰는 장기이기에 질환 발생 시 초기 처치가 늦으면 바로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청와대 의무실에 치과를 운영하길 권한다. 노동 강도가 센 직장은 치과 진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그나저나 누구나 악물며 살아가는 힘든 시기다. 이 편한 세상은 언제 오나 싶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움직이는 고령사회, 어울리는 한국사회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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