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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미드나잇 군사퍼레이드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0월 11일
  • 2분 분량

<조선일보>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0.10.12


사진 몇 장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진 적이 있다. 2017년 5월 3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승리의 날’ 72주년 군사퍼레이드 리허설이 열렸다. 그런데 시간이 한밤중이었다. 사진은 장갑식 우랄 트럭, 내마모성 매복 보호 장갑차, 분할 자기 추진 곡사포 등이라고 했다. 광장을 밝힌 조명 덕에 크렘림궁까지 환했다. 부크 지대공 중거리 미사일도 눈에 띄었다. 시민들도 한밤중 스탠드를 가득 메운 모습이었다.



▶미국에서도 해 진 뒤 군 밴드 퍼레이드가 있다. 백악관에는 대통령 전용 브라스 밴드가 있는데 ‘프렌지던츠 오운(president’s own)’, 즉 ‘대통령 소유’라고 한다. 한때는 미 해병 밴드 전체를 뜻했지만 지금은 백악관에 있는 프로급 기량을 가진 악단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이 여름 저녁 금요일 밤이면 8시 45분부터 1시간 15분 동안 ‘이브닝 퍼레이드’를 펼친다.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해 진 뒤에 열리는 ‘해병 선셋 퍼레이드’도 있지만, 그뿐이다.


▶북한이 지난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부터 3시간 동안 열병식을 열었다. 그 무렵 평양 기준 아침 해는 6시 반쯤 떴다. 열병식은 동트기 한참 전 깜깜 밤중에 진행됐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했다는데, 열병식이 끝나자 청년들이 횃불 들고 카 퍼레이드까지 펼쳤다고 한다. 현장에 동원된 시민들 고생도 컸겠다. 김정은이 인민의 고생을 언급하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는데, 정작 행사는 쌀쌀한 가을밤 12시에 열었던 셈이다.


▶북한 문제에 해박한 한 전직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무슨 참배 같은 것을 할 때 늘 새벽 0시에 하곤 했다. 다음 날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한껏 부여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군사 열병식을 새벽 0시에 하는 것은 처음 본다.” 지난 7월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 26주기를 맞아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을 때도 그랬다. 북한 관영 매체가 정확한 시간을 말하진 않지만 대략 늦은 밤이나 자정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도 국군의 날 행사 때 한밤중에 연습을 한 적이 있다. 여름부터 시작된 준비 때 뙤약볕에 고생하는 행진 장병들을 배려한 조치였다. 그러다 재작년엔 이런 행사마저 사라지고 ‘저녁 쇼’를 했다. 해진 뒤에 전쟁박물관에서 영상과 태권도 시범을 했고, 드론봇 시연과 축하 공연을 보여줬다. 이젠 국가 기념일에 군사 퍼레이드를 펼치는 나라가 많지 않지만 이왕 할 때는 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북한은 그걸 밤 12시에 하는 체제다. 정상이 아니다. 뭐, 우리는 그나마 없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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