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노벨상 여성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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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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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20.10.10
1903년 방사선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당초 수상 후보가 아니었다.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와 공동 연구자 앙리 베크렐만 후보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마리가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당시 과학 아카데미는 여성 회원을 받아주지도 않았고 과학계엔 ‘여성은 과학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이 가득했다. 남편 피에르가 수차례 탄원서를 올린 끝에 마리는 노벨상 첫 여성 수상자가 됐고, 1911년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아 여성으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노벨상 시상이 시작된 1901년 이후 120년간 총 수상자 960명 중 여성 수상자는 58명뿐이다. 6%에 불과한 숫자다. 특히 과학상 부문의 여성 수상자 비율이 매우 낮다. 노벨상의 남성 편향은 그동안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다. 1963년 미국의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가 퀴리 이후 첫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됐을 때 어떤 미국 신문은 “한 샌디에이고 가정주부가 노벨상을 받게 됐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생 조슬린 벨 버넬은 ‘주기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별’이란 뜻의 펄서(pulsar)를 발견했다. 그러나 1974년 노벨상 시상식에서 그의 지도교수 앤서니 휴이시가 물리학상을 받았다. 여성인 벨 버넬을 수상자에서 제외한 이 사건은 노벨상 최악의 잘못으로 꼽히곤 한다. 벨 버넬은 2018년에서야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을 받았다.
▶과학계에서는 이를 ‘마틸다 효과’로 설명한다. 같은 업적을 쌓아도 여성 과학자가 남성 과학자보다 과소평가되는 현상이다. 19세기 말 여성운동가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가 언급한 내용을 1990년대 들어 그렇게 이름 붙였다. 이후 노벨과학상 종신 심사위원들의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그 와중에 3년 전 스웨덴 한림원에서 ‘미투 사건’까지 터지면서 한림원은 여성 위원 비율을 3분의 1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경제학상 발표만 남긴 올해 노벨상에서 여성 네 명이 3개 부문 수상자가 됐다. 물리학상과 화학상, 문학상의 주인공이다. 특히 화학상 수상자인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는 노벨과학상에서 최초로 여성이 공동수상하게 됐다. 물리학상을 받게 된 앤드리아 게즈는 사상 네 번째 여성 물리학상 수상자다. 이들이 수상 소감에서 밝힌 것처럼 “과학의 길을 걸으려는 젊은 여성들에게 긍정의 메시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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