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김한솔 탈출극, 국정원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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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1월 19일
- 2분 분량
<조선일보>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20.11.19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던 북한 외교관이 어느 날 평양 외무성 친구로부터 “손님이 간다”는 전화를 받았다. ‘너 잡으러 간다’는 암시였다. 그 길로 부근에 있던 서유럽국 대사관으로 달려가 망명 신청을 했다. 다양한 정보 요원들이 와서 나라별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설명해줬다고 한다. 그는 “여러 나라를 거쳐 탈출하려면 CIA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10여년 전 김정남이 사는 마카오의 한 아파트를 찾아간 적이 있다. 아들 김한솔이 다니던 국제 학교 부근이었다. 북한 요원들이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안내해준 현지인이 “북한이 아니라 마카오 경찰한테 걸려 곤욕이나 치르지 마라”고 했다. 중국이 자기 영토인 마카오에서 김정남 가족이 다치는 걸 막으려고 오히려 북 접근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2월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마카오로 가려다 암살당했다.
▶한국계 재미 작가가 그제 미 주간지에 쓴 김한솔 가족의 마카오 탈출기는 영화보다 극적이다. 김정남 살해 다음 날인 14일 김한솔은 자기 집을 지키던 마카오 경찰이 없어진 걸 보고 위험을 직감했다. 4년 전 파리에서 만난 반북(反北) 단체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 창에게 탈출을 도와달라고 급히 전화했다. 홍 창의 주선으로 15일 새벽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한국계 미 해병대 출신과 김한솔 가족이 만났다. 몇 시간 뒤 어느 국가에서 홍 창에게 ‘김한솔 가족을 받아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날 밤 김한솔 가족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으로 가려 했지만 탑승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저지당했다. 이때 CIA 요원이라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김한솔 가족은 출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비행기 탑승 직전 김한솔은 “홍 창과 네덜란드·중국·미국 정부 등에 감사하다”는 동영상을 찍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 내린 뒤 누군가에게 이끌려 공항 내 호텔로 이동했다. 홍 창은 호텔로 간 김한솔과 통화만 하고 만나지는 못했다. 이후 김한솔 가족은 종적을 감췄다. 네덜란드에 있는지, CIA와 미국으로 갔는지도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아직 무사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홍 창은 2004년 예일대에 진학하면서 북한 인권 운동에 눈을 떴다. 지하 조직 ‘자유조선’을 만들어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을 공격하기도 했다. 돈과 출세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과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 같은 김한솔 탈출기에 당사자인 한국의 국정원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능해서일까, 신출귀몰해서일까. 후자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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