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국민 참사가 대통령 치적으로 바뀌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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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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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신동흔 기자 입력 2020.09.29

신동흔 문화부 차장
‘대통령님 진짜 어떻게 하신 거임, 북이 이 정도로 성의 있게 사과·반성·재발 방지 약속까지 풀세트로 한 적 없었음’(별난놈) ‘김정은 사과 수위가 의외로 높아 놀랐다. 역시 문프!’(Evergreen)
일부 여권 지지자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서해상에 표류하던 우리 국민이 총에 맞아 죽고 불태워졌는데, 이들은 북의 사과를 더 반긴다. 통지문 한 장에 참사가 대통령 치적으로 바뀌는 마법이 벌어진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전화위복’이니 ‘계몽군주’니 하는 발언은 이런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정권 지지자들은 큰 이슈가 생기면 사안을 비틀어 유리하게 몰고가는 데 능하다. 김어준은 시신 훼손을 ‘화장(火葬)'이라 표현하더니, “북이 (코로나 때문에) 평소 같으면 환영했을 월북자 한 명 거둬줄 여유가 없다”고 했다. 총격 사망과 시신 훼손에 쏠리는 관심을 틀어 보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친여 성향 유튜브 ‘이동형TV’에선 출연자들이 웃어가며 시간대별 사건 정황을 짚어보기까지 했다. 이들은 아무리 위중한 사안도 희화화해 심각성을 휘발시켜 버리는 재주를 갖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나 지난해 조국 사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병역 비리 등에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여론 형성 과정에 사실(fact)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마치 하나의 현실이 있고, 이와 다른 현실이 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세월호 침몰 배후설, 선거 부정 음모론 같은 이른바 ‘대안적 사실’에 심취한 이들도 많다. 물론, 대안적 사실은 대부분 허구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실험이 하나 소개된다. 구글 검색창에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입력해 사람·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른 연관 검색어가 제시되는지 조사했더니 어떤 이에겐 기후변화의 연관어로 ‘거짓말(hoax)’이 추천되고, 다른 이에겐 ‘환경운동’, ‘지구 파괴’ 같은 단어가 나왔다. 이용자별로 최적화된 검색 결과를 찾도록 만들어진 알고리즘 덕분인데, 이는 맛집 검색이나 영화 추천에는 도움이 되지만, 뉴스까지 이런 식으로 접하면 다른 견해를 접하지 못하는 상황에 갇히게 된다.
매스미디어의 경우, 독자나 시청자가 최소한 같은 조간 신문, 같은 저녁 뉴스를 본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검색과 소셜미디어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은 보는 내용이 다른데도 같은 뉴스를 본다는 착각에 빠져 살게 된다. 김어준의 ‘화장’ 발언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에게 고(故) 백선엽 장군 추모 뉴스는 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뉴스인 셈이다. 어느덧 우리는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면서도 만날 수 없는, 여론의 ‘평행 우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한 뉴스 소비가 가져올 위험성을 놓고 청문회가 집중적으로 열렸다. 민주주의의 퇴보를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상황을 활용하는 데 더 혈안이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출신들은 유명세를 기반으로 지상파 메인 MC 를 꿰찼고, 포털 임원 출신들은 청와대에 참모로 들어갔다. 지금은 여당 의원이 된 네이버 출신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의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 하세요’ 메시지는 이 정권이 여론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소셜딜레마’에는 구글·페이스북에서 일했던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이 직접 출연한다. 자기 손으로 페이스북에 ‘좋아요’ 버튼을 만들고,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설계한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대해 "독재자나 권위주의자 손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고백한다. 뭐든 ‘달님 덕분’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이미 그렇게 된 것 같다.
신동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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