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89] 어두운 상점들 거리를 지나면 빛이 보일까
- senior6040
- 2020년 12월 9일
- 1분 분량
<조선일보>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0.12.09
“거리는 사람 하나 없이 황량했고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보다 더 어두웠다. 경찰관은 여전히 맞은편 인도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경찰관이 순찰을 돌고 있는, 인적 없는 광장이 보였다. 건물의 모든 창이 천천히 내리는 어둠을 빨아들였다. 검은 창문들은 여기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해주었다.”
―파트리크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중에서

오래전 등화관제를 시행했다. 북한 도발 시 적기가 불빛을 향해 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커튼을 치고 불을 끄고 암흑과 정적을 견디는, 야간 공습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통행금지도 있었다. 사람들은 신데렐라처럼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기 전에 집에 들어가느라 뛰었다. 시간을 넘기면 파출소에서 하룻밤을 신세 져야 했다.
그때보다 더한 시대가 왔다. “서울을 멈추겠다. 도시의 불을 끄겠다”고 서울시가 선포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저녁 9시부터 모든 경제 활동을 금지하고 시민의 자유를 통제한다. 2주 예정이라지만 빌딩과 상가의 공실률은 더 높아지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폐업은 늘어날 것이다. 감염 가능성보다 겁나는 건 생계의 막막함인 것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201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가 1978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과거를 추적하던 중 한때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가 캄캄한 거리를 내려다본다. 희미한 과거와 표류하는 현재, 불투명한 미래가 보일 뿐,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서 그는 섬뜩함마저 느낀다.
9시 통금의 목적은 방역인가, 절전인가? 중산층 몰락과 경제 붕괴는 아닌가? 유리한 과거는 미화하고 불리한 역사는 지우려는 권력자, 결핵보다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가 전쟁과 빈곤보다 무섭다는 정치인,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꼼짝 말라며 두려움을 과장하는 그들이 바라는 미래는 어떤 세계일까? 불 꺼진 도시, 인적 없는 텅 빈 상가, 검문하는 경찰들만 서성이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지나면 눈부신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의심과 불안이 깊어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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