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산업부의 ‘청와대 파일’ 삭제,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 senior6040
- 2020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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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0.10.2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북 경주의 월성1호기 원자력 발전소의 조기 가동중단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결론 났다. 감사 결론의 요점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월성 원전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감사 결과를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말이 약간 꼬여 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결론,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 이 부분을 다시 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즉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너무 헐값으로 봤다는 것이다. 아직은 전기를 만들어서 내다팔고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발전소인데, 그렇지 않은 곳으로 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봤다는 것인가.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한국수력원자력, 이 두 곳에서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고 했을 때, “불합리하게”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불합리’라는 이 글자에는 어쩌면 최재형 감사원장이 숨겨놓은 중대한 메시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성을 낮게 평가했다”고 했을 때 평가에 관한 시스템 때문에 제도적으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냐, 이 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도적’이라면, 그것은 범죄 행위다. 탈원전이라는 ‘대통령의 꿈’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나라의 에너지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천벌 받을 짓을 한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불합리하게’ 이 말은 제도적으로 잘못됐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뜻입니까.
이번 감사의 다른 결론은 ‘월성1호기의 가동을 즉시 중단한 것이 타당한 것이었느냐, 그 점에 대해서는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말이 더 심하게 꼬여 있다. 좀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보겠다. 감사원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감사위원회이고 이번에는 감사원장을 포함해서 모두 6명이었는데, 이 감사위원들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들이냐, 이들이 문재인 정권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들이냐, 이 판단도 중요하다. 또 3대 3으로 자기들끼리 의견이 서로 맞지 않고 크게 맞설 경우 어느 중간 지점에서 타협을 보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원전 즉시 중단이 타당한 것이었느냐, 즉 옳은 것이었느냐, 이 점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일부러 판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둘 중 어느 것인지 이제 우리 시청자들이 생각해볼 문제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여기에도 최재형 감사원장이 숨겨놓은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월성 1호기 즉시 중단이 타당했느냐, 그걸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 말은 감사원 스스로 자가당착의 표현을 그대로 노출시켜 놓은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아주 간단하다. 첫째 결론은 산업부와 한수원이 월성의 경제성을 낮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등학생도 둘째 결론을 낼 수 있는데, 그것은 ‘원전 즉시 중단이 타당하지 않았다, 즉 부당(不當)했다’고 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판단에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어물쩍 빠져나가는 결론을 내놓았다. 여기에 최재형 감사원장의 고뇌가 숨어 있다고 봐야하는 것인데, 우리 눈 밝은 시청자들께서 서로 상충하는 모순 덩어리 두 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지금의 감사위원회 구조를 알아차리시라는 뜻이다.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 것’, 그것은 이번 감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공개한 것이고, 정권이 바뀌면 감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묵언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감사위원회는 종합 판단을 유보하는 것 같은 두루뭉술한 결론으로 정권 사람들의 눈을 속여 놓고, 대신 깨알 같은 각론에서 월성1호기 폐쇄가 얼마나 엉터리 결정이었으며 범법 행위였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즉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에게 위법한 행동을 저지르도록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조선일보 2면 톱은 “문재인 대통령이 ‘언제 멈추나’ 질문한 직후에 백운규가 중단을 지시했다”고 했고, 중앙일보 1면 톱은 “백운규 원전 위법을 부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다”고 했다. 2018년4월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됩니까?” 그 말을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전해들은 산업부 과장이 백운규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자 백운규 장관은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함께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즉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에는 대통령의 눈치를 본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를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을 지속적으로 압박한 내용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통상 한수원으로 줄여서 부르는데,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과 수력 발전을 관할하는 공기업이고, 산업부의 산하 기관이다. 당시 산업부의 한 과장은 한수원 측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1주년 이전에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산업부에서도 관심이 많은데 한수원 직원들이 인사상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인사상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이건 무슨 말인가. 당신들은 목이 열 개나 되는 줄 아느냐, 까닥 잘못하면 다음 인사에서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 이렇게 협박하는 것이다.
이번 감사의 성과는 또 있다. 감사 전날 밤, 원전 자료 444개 지워졌다는 사실을 밝혀낸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가 착수되자 관련 증거 자료와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 등 444개 파일을 조직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 감사 전날인 일요일 다른 직원의 눈을 피해 밤 11시쯤 야심한 한밤중에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 파일 이름을 바꾼 뒤 삭제하는 등 복구 불능 상태로 증거를 인멸했다고 한다. ‘도망가는 놈’이 범인이고, ‘증거를 지우는 놈’이 범인이라는 것은 기본 상식 중에 상식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는 정황 증거가 아니다. 현장을 녹화한 것처럼 구체적이다. ’2019년12월1일 일요일 오후10시 산업부 직원 G씨가 청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한때 자신이 썼으나 이젠 동료가 쓰는 컴퓨터를 켰다. 비밀번호는 미리 받았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담당 국장으로부터 컴퓨터는 물론 e메일과 휴대전화 등 모든 매체에 저장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를 받은 상황이었다. 자정 가까운 밤11시24분 36초부터 지우기 시작했다.…'
야심한 한밤중, 사무실을 뒤져 파일을 지우는 직원들,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그렇다. 미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 영화를 통해서도 여러 번 보셨을 텐데, 1972년 워싱턴DC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침입한 다섯 명의 남자들, 이들은 3주 전에도 같은 장소를 침입한 적이 있는데,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던 도청기를 다시 설치하러 들어갔던 것이다. 그때 일로 결국 미국 닉슨 대통령이 물러나고 말았는데, 범인들의 치명적인 실수는 백악관 연락처를 기록한 수첩을 몸에 지닌 채 경찰에 체포됐다는 점이다. 이번에 우리 감사원 감사로 밝혀진 산업부의 ‘증거 인멸’ 중에는 대통령 보고 문건도 삭제했다고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을 물러나게 한 결정적 증거가 범인의 몸에서 나온 백악관 연락처였는데, 우리나라 감사원은 산업부가 청와대 보고 문건을 지웠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번 월성 1호기 감사가 이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반드시 재감사가 이뤄질 것이다. 왜냐. 최재형 감사원장이 스스로의 ‘모순 덩어리 감사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업부가 지워버린 파일 444개를 복원해서 청와대 관련 보고 내용을 다시 밝혀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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