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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암튼 몰라요”라는 K방역

  • 작성자 사진: senior6040
    senior6040
  • 2020년 12월 4일
  • 2분 분량

<조선일보>허유진 기자 입력 2020.12.04


지난달 27일 평소 즐겨 찾던 브런치 카페에 들렀다. 직원이 조용히 텀블러를 건넸다. 따뜻한 커피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이 매장은 단골을 위해 법을 위반한 것이다. 방역 당국이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를 통해 수도권 카페에서는 브런치는 팔되 ‘커피'는 팔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게 앞 패스트푸드점에선 커피와 콜라를 팔고 있었다. 이 직원은 “브런치는 되고 커피는 안 된다는 지침도 이해가 안 가는데 또 커피마저도 카페는 안 되고 패스트푸드점은 된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서 “시청·구청에 기준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담당자들도 제대로 모르더라”고 말했다.


3일 광주 서구 상무지구의 한 카페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따른 좌석 이용을 못 하도록 의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광주시가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2단계로 격상하며 커피전문점 등 카페는 배달과 포장 판매만 가능하다. /연합뉴스



직접 전화해봤다. 우선 서울시. 시민건강국과 감염병관리과 담당자가 “세부 지침은 관련 부서가 알고 있으니, ‘식품정책과'에 문의해달라”고 했다. 식품정책과에 전화해 ‘브런치 카페나 햄버거 가게처럼 카페에서도 샌드위치 등 식사를 팔면 매장 내 취식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카페들 문의가 많아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이라며 “현장에서 혼란이 있는 부분은 향후 논의를 통해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 지난 1일 브런치 카페에서 문자가 왔다. “매장 내에서 식사하는 조건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실 수 있다”면서 기뻐했다. 그 사이 문의와 항의가 빗발치자 서울시와 정부가 부랴부랴 ‘식사 시 매장 내 취식 가능’이라는 새로운 방역 지침을 발표한 것이다. 그마저도 커피만 마실 수는 없고 커피와 식사를 같이 하는 조건에서 커피 음용을 허용한다는 여전히 이상한 지침이었다.


체육관 규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킥복싱은 불허고, 복싱은 허용인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서울시는 “집합 금지 대상 선정 기준은 방역 당국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직원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문의하라”고 공을 넘겼다. 중수본 생활방역팀 담당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해준 기준에 따랐다”고 말했고, 문체부 관계자는 “킥복싱은 중수본이 추가했다”고 다시 말을 돌렸다. 킥복싱 도장들은 궁여지책으로 킥복싱 대신 복싱과 무에타이를 강습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수강생들 발을 붙잡고 있다.


기자야 해명을 안 들어도 상관없지만 매일 먹고사는 일이 걸린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 간다. 불법과 합법의 모호한 경계에서 가슴 졸이며 장사를 이어간다. 매출이 급락하면서 배달 영업을 시작한 개인 카페 사장은 감사 메모와 서비스 간식을 함께 보내면서 겨우 버티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확산 원인을 콕 집어 해소하는 ‘K핀셋 방역’으로 일상을 지켜주겠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책임 주체도 없고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는 ‘K핀셋 방역'은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방역 당국 모습을 보면서 과연 K방역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허유진 기자 사회부 기동취재팀 허유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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