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산은 회장의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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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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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윤진호 기자 입력 2020.11.25
항공사 빅딜을 주도하고 있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특혜 시비와 (항공산업) 국유화 우려를 적극 해명하고 있지만 논란이 진화되지 않고 있다. “항공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 회장은 그동안 지켜온 구조조정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19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항공사 빅딜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산업은행
그는 한국GM이나 쌍용자동차 등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이해관계자의 책임 분담, 지속 가능한 정상화 방안이다. 희생 없이 사익만 챙기려는 쌍용차 노사를 향해 “죽으려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까지 인용하면서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외압이 들어올 수 있는 사안이 많았지만 이 회장은 원칙을 내세우며 혈세 낭비를 막고, 적재적소에 기업 지원이 이뤄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항공사 빅딜에선 산은이 지켜온 원칙을 찾아볼 수 없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글로벌 7위권 항공사 경영자에 오를 수 있는 데다 경영권 분쟁 중에 우군(산은)까지 확보했다. 산은으로부터 막대한 자금 지원도 받게 됐지만 조 회장의 ‘책임 있는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이해관계자의 책임분담’은 원치 않는 부실기업을 떠안게 된 한진칼·대한항공 소액주주들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변질됐다. 산은이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기업들에게 수없이 퇴짜를 내며 다듬었던 ‘정상화 방안’도 이번엔 없었다.
이 회장은 자본시장 논리를 역행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조 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강성부 KCGI 대표를 두고 “자기 돈 0원인 강 대표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고 언급한 것이다. 조 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기면서 그의 지분을 담보로 잡았지만, 강 대표에겐 볼모로 잡아 둘 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였다. KCGI 측은 즉각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투자자의 자금을 관리하는 국내외 금융인들을 폄하하는 인식”이라고 반박했다.
껄끄러운 질문은 ‘정치색이 짙다’고 치부한다. “산은이 앞으로 한진칼에 정부 뜻에 맞는 경영진을 추천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 회장은 “제발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이 문제를 보진 말아달라. 객관적으로 비판해달라”고 일축했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인데 도리어 이 회장이 색안경을 끼고 대답한 셈이다. 회장을 청와대에서 임명하고,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도 총대를 메는 산은에서 정치적 색안경 운운하는 건 적반하장에 가깝다.
“위기에 빠진 항공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기업 구조조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산은이 이런 식으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내 산업 구조 개편은 언제 어디서 꼬일지 알 수 없다. 원칙을 저버린 구조조정은 결국 중도에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윤진호 기자 정확하고 깊이 있는 경제 기사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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