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경알못’ 與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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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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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김경필 기자 입력 2020.10.20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중앙은행 총재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 별다른 화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이틀 뒤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총재에게 “한은이 본연의 역할도 제대로 못 하면서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정부 정책에 훈수를 두겠다는 것이냐.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떠올랐다”고 비난하면서 이 총재의 말은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듣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양 의원의 비난과 달리 당시 이 총재는 ‘대안’을 제시했다. 1년 사이 연간 정부 지출을 80조원 가까이 늘리는 과도한 재정 확장에 대해 법으로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의원은 이 총재를 향해 “빚을 내서라도 선제적인 재정 확장 정책으로 경제 도약의 기반을 조성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렇게 하면서 한은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이냐”며 훈계했다.
양 의원은 한은 역할이 뭔지 정확히 모르는 듯하다. 그저 재정 정책에 권한이 없는 한은이 현 정부 정책 기조에 딴죽을 건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한은의 제1 목표는 물가 안정이고 그다음이 금융 안정이다. 국가채무를 관리하지 못해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면 국가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외환시장도 흔들린다.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러니 한은 총재가 재정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나 유럽중앙은행(ECB) 수장들도 수시로 재정 정책과 관련한 의견을 낸다. 이를 ‘월권’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재정 적자를 법으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만들기로 하면서 국가채무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40%가 아닌 60%로 늘려 잡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그마저도 5년 뒤인 2025년부터 시행하는데 정부가 국가 재정의 ‘마지노선’마저 포기해 미래 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지울 듯한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 이 총재가 “현재 상황에서는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장기 전망을 보면 건전성 저하가 우려된다”고 하고, “위기에서 회복됐을 때를 생각하면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말한 건 당연한 원칙을 언급한 것일 뿐이다. ‘너나 잘하라’는 식으로 조롱당할 사안은 아니다.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주문하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고 경제 정책을 논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그건 해당 사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나서 할 일이다. 양 의원 발언은 ‘경알못(경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여당이 중앙은행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중앙은행마저 정부 정책 기조에 끼워 맞추려는 ‘관치(官治)’의 유혹에 깊게 빠져 있는 것일까. 그런 관치 금융 관행이 20여 년 전 외환 위기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라는 걸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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