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포기 안한 프랑스...4년만에 풀려난 인질에 대통령이 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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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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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이세영 기자입력 2020.10.09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 검은색 정장) 프랑스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파리 인근 공군기지에서 4년 가까운 억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소피 페트로냉(흰 두건을 쓴 여성)을 직접 마중했다. /EPA연합뉴스
전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프랑스 국적의 인질이었던 인권운동가 소피 페트로냉(75)이 아프리카 말리에서 4년에 가까운 억류 생활을 마치고 9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로 돌아왔다. 페트로냉은 지난 2016년 말리에서 아동 구호 활동을 하다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납치됐었다. 자국민의 기적적인 생환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직접 공항에 나가 페트로냉을 마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 검은색 정장) 프랑스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파리 인근 공군기지에서 4년 가까운 억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소피 페트로냉(흰 두건을 쓴 여성)을 직접 마중했다. /AFP연합뉴스
AFP통신, 프랑스24 등에 따르면 페트로냉은 지난 2016년 12월 24일 말리 남동부 가오에서 납치된 뒤 지난 5일 석방됐고 1385일 만인 9일 파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보르도 출신인 페트로냉은 영양학 전문의로 아프리카 등에서 발생하는 특수 질병에 관심을 가졌다. 이에 그는 2001년 가오로 넘어가 보육원을 열고 기아에 시달리는 고아들을 돌봤다. 2003년에는 아동 구호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알카에다 관련 이슬람 무장단체가 2012년 4월 가오를 점령하자 페트로냉은 잠시 알제리로 이주했다가 가오로 돌아왔다.
페트로냉의 아들 세바스티앙은 지난 7일부터 말리 수도 바마코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세바스티앙은 공항에서 “어머니! 어머니!”라고 외치며 페트로냉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페트로냉이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세바스티앙은 어머니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머리에 기대 눈을 감고 울기도 했다.
페트로냉은 “몸무게가 줄고 치아 4개를 잃었으나 빨리 몸을 회복해서 다시 일하러 가겠다”며 “억류 기간 동안 학대를 당하지 않았고 산책도 했다”고 했다. 그는 인질로 잡혀있던 기간에 대해 “조금 길었다”면서도 “잠시 여정을 떠난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죽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며 “죽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고 했다.

/프랑스24
당초 페트로냉이 사라졌을 때 그녀를 납치했다고 주장한 단체는 없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중북부 사헬 지대에서 활동하는 JNIM이라는 단체가 2011~2017년 외국인 6명을 납치했고 이중 페트로냉이 포함됐다는 내용의 영상을 2017년 7월 공개했다고 프랑스24는 전했다. 2012년 말리 북부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통제를 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파리 인근 공군기지로 나가 페트로냉을 직접 마중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말리 당국에 감사하다”며 “사헬에서 테러와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페트로냉이 파리로 돌아오기 직전 트위터를 통해 “그녀를 마중 나가겠다”면서 “전화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뒤 (그녀가) 안전해진 것을 알고 정말 기뻤다”고 했다.
프랑스는 극단적 테러리스트들이 사헬 지대로부터 들어온다고 판단해 이곳에서 2013년 1월부터 군사 작전을 벌였다. 무장반군은 민간인, 말리 정부군, 프랑스군, 유엔군에 저항하며 8년간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말리 정부는 최근 교도소에서 수감된 무장반군 약 200명을 풀어주면서 페트로냉을 포함한 인질 4명을 데려왔다. 말리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수말리아 시세, 이탈리아 국적의 페이르루이지 마칼리 신부와 니콜라 치아치오 등이다. 말리 정부가 포로 석방에 따로 몸값이 지불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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