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세금’이라 쓰고 ‘벌금’이라 읽는다
- senior6040
- 2020년 11월 19일
- 2분 분량
<조선일보>
서울 반포자이 34평 아파트 내년부터 보유세 월 130만원 세금 못 내면 “집 팔라”는 정부 국민 고통이 정책 목표인가
서울 반포자이 전용면적 84㎡(34평)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은 내년부터 1500만원, 월 평균 130만원 정도를 아파트 보유세로 내야 한다.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도 소득세와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을 공제하고 받는 실수령액의 거의 두 달 치다.

보유세 인상 스케줄을 보면 무시무시하다. 정부 방침대로 밀어붙이면 2025년엔 3200만원이 넘게 된다. 월급이 오른다고 해도 이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부는 세금 폭증이 예견되는데도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해야 더 빨리 세금을 올릴지 골몰하는 것 같다. 종합부동산세율을 올리고, 부동산세의 과표가 되는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빠른 속도로 흔들림 없이 올리겠다고 한다. 급속도의 세금 인상 때문에 생길 국민의 고통을 살피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듯한 정부는 문재인 정부 외에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라는 푸념까지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껏 한국의 주택 보유세는 선진국보다 낮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런 스케줄대로라면 정부가 말하는 시세 9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가 실제 부담하는 보유세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될 판이다. 미국에서 보유세가 높은 지역으로 꼽히는 뉴욕의 보유세율은 1.72% 정도다. 반포자이 34평처럼 공시가격 20억원짜리 집이라면 3500만원 정도를 매년 내야 한다. 그러나 부부 합산 1만달러(약 1110만원)까지는 소득 공제 혜택을 주고, 담보 대출을 받았다면 이자의 일부도 공제해 준다. 보유세 과표도 매년 6%, 5년 간 총 20% 이상 올리지 못하게 돼 있다. 세금이 매년 수십%씩, 국민이 견디지 못할 만큼 오를 일은 없는 것이다. 취득세·양도세 등 거래세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 내기 어려우면 집을 팔라고 한다. 현 정부 청와대에서는 ‘꼭 강남에 살 필요 없다’ ‘집을 파시라’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그런데 정부 정책을 따르려면 주거 여건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 시세 9억원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팔고 옮기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9억원 이상 주택 양도세는 1주택자라도 다 면제되지 않기 때문에 집을 팔면, 대부분 수억원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게다가 이사갈 집을 살 때에도 집값에 따라 3%까지 수천만원의 취득세를 내야 한다. 자녀들을 전학시키며 살던 집보다 훨씬 싼 집으로 옮겨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살고 싶은 곳으로, 조금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은 ‘꿈’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집을 가진 사람도, 무주택자도 모두 절망하고 있는 게 지금 한국의 주택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폭증할 주택 보유세가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값이 내리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올 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던 집값은 “원상 회복돼야 한다”며, 서울 대부분의 집값이 반 토막이 나야 한다는 ‘진심’을 내비쳤다.
그런데 집값이 내리기 위해서는 공급이 늘어야 하는데 공공기관 보유 자투리 땅에 임대주택을 짓거나, 폐업하는 호텔을 개조해 전세를 놓겠다는 식의 대책으로는 시장 수요를 맞추는 건 어림도 없다. 그러니 벌금같이 세금을 올려 다(多)주택자들이 집을 내놓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폭탄 같은 세금을 먼저 못 견딜 사람은 월세를 올리며 버틸 수 있는 다주택자가 아니라 자기 집에 살고 있는 1주택자다. 이들의 고통이 커져야 정부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양상이다. 참 불행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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