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방송통신위원회의 존립 이유를 묻는다
- senior6040
- 2020년 11월 23일
- 3분 분량
<조선일보>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0.11.23
MBN 방송 중단 조치는 종편 승인을 ‘머니게임’化한 방통위 정책 과실이 근원 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뒷전… 특정 세력 이해 대변하는 방통위 근원적 대수술해야
지난 10월 3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합 편성 채널 중 하나인 MBN에 대해 6개월 방송 중단 처분을 내렸다. 금융 당국과 검찰이 밝힌 종편 승인 과정에서의 자본금 불법 충당 및 회계 조작에 대한 제재 조치였다. 그 직후 이뤄진 방통위 재승인 심사에서 MBN은 기준 점수(650점)에 못 미치는 640.50점을 받았다.

30일 경기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2020 제58차 위원회. 이날 위원회는 (주)매일방송에 6개월 업무 정지 처분을 의결했다./방송통신위원회
이 같은 방통위의 처분과 심사는 모두 법 제도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적법한 일들이다. 하지만 이 과정들을 지켜보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MBN을 편들 생각도 이유도 없다. MBN은 설립 당시 분명 실정법을 위반했다. 그러나 이런 과오(過誤)로 인해 방송사가 아니라 왜 현재 시청자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 나아가 MBN의 위법 행위에 대해 방통위는 해명이나 사과는 못할 망정 제재를 가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사태의 시작은 2010년 종합 편성 채널 도입으로 되돌아간다. 당시 방통위는 납입 자본금 규모를 종편 승인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3000억원을 최소 납입액으로 정한 뒤 추가로 출자한 방송에 가산점을 줬다. 사업자들 간에 투자 유치 전쟁이 벌어진 건 불문가지다. MBN은 3950억원을 모을 수 있다고 약속했는데, 실제 방송사 설립 과정에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임직원 20여 명에게 사측이 지급 보증한 차명 대출금 수십억원씩을 돌려 자사 주식을 사게 하는 식으로 투자자와 납입 자본금을 부풀렸다.
결국 이 사태의 뿌리에는 방송 사업 진입을 일종의 ‘머니 게임’으로 만들어 무리한 투자 유치 약속과 편법 납입을 유도한 방통위의 정책 과실이 존재한다. 이는 작지만 건실한 사업자들의 진입을 가로막은 정책이기도 하다. 그랬던 방통위는 사정 당국들이 문제의 실상을 밝히자 모든 책임을 사업자 잘못으로 돌려 방송 중단이란 극약 처분을 내린 것이다.
우리가 방통위라는 방송 영역의 정책 기구를 따로 둔 이유는 방송에서는 정치적 독립, 공정성, 공익 등 여타 산업과 구분되는 규범적 목표가 추구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다. “방송 역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여론 형성 기능을 수행하는 대중 매체란 점에서 신문 등 정기 간행물과 다름이 없고, 그에 대한 자유와 규제는 기본적인 점에서 인쇄 미디어와 다를 바 없다. 다만 방송은 전달 기술의 물리적 특성과 사회적 영향력에서 특수성을 가지므로 그에 상응한 법적 취급을 받게 된다(박용상, ‘언론의 자유’ 132쪽).”
정리하면, 방통위에 부여된 일체의 행정적 권한들은 방송 사업자들이 독립적 언론의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하도록 행사되는 한도 내에서 정당화된다. 방통위가 국가 권력의 위력(威力) 앞에 방송의 독립을 지켜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권력기관이 되어 방송을 위축시킨다면, 이는 방송에 적용되는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고 자신의 존립 이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 된다.
방통위가 지금껏 보여준 모습이 그러했다. 방통위의 각종 허가·승인·심사·규제 권한은 자유롭되 책임 있는 방송을 지켜내기 위해 ‘최소한’으로 절제되어야 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이 권한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방송을 옥죄는 행정 권력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면서 외부 권력에 맞서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본연의 역할은 방기했다. 부정적 의미의 외유내강(外柔內剛)이었다. 이번 MBN 사태처럼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방송 사업자의 과오에 대한 사정 기관들의 결과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방송 중단 처분을 내리고 재승인 심사로 결정타를 날리는 일이 그 전형이다.
우리 사회에 “XXX들, 차관 들어오라 해” 식의 권력 횡포에서 자유로운 행정 부처는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특히 방통위의 경우, 위원 5명 중 3명이 정부 여당 측의 이른바 코드 인사로 채워지고 있음은 기지의 사실이다. 권력에 맞선 방패는커녕 권력이 방송을 좌우하는 도구인 셈이다. 이번 MBN 사태 역시 종편에 대한 권력의 분풀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설상가상, 방통위는 전문가들이 불필요하다고 평가한 자체 시청률 조사 사업에 매년 거액의 예산을 허비하고, 언론 팩트 체크 활동에 대한 지원처럼 나서지 말 일에 관여하면서, 정작 페이스북 징계 조치 재판에선 패소(敗訴)한 것처럼 국익과 주권을 수호하는 역할에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번 MBN 사태를 지켜보면서 방통위의 존립 타당성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근원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감사원 정도면 그 작업을 믿고 맡겨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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