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000명 사망후 '집단면역' 형성…伊 값비싼 코로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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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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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입력 2020.06.11이민정 기자
이탈리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폭풍이 거세다. 총리는 ‘방역 실패’의 오명에다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됐고, 경제 추락과 실업대란이 예고된 상태다. 최악의 피해를 겪은 롬바르디아주의 소도시 베르가모는 결과적으로 '집단면역' 수준까지 갔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의료인들이 정부의 의료 재정 지원을 요구하며 가면을 쓰고 시위에 나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정부가 책임져라”…주민들 집단 소송
1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은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로베르토 스페란자 보건부 장관 등이 코로나19 확산 피해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현지 검찰은 코로나19 최대 피해 지역인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베르가모 등 주변 지역에서 봉쇄조치가 늦어진 이유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번 검찰 조사는 베르가모의 코로나19 사망자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유족은 “(가족들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파악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미적대는 바람에 피해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또 개인보호장비·의료진·병상 부족 등 적절한 의료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유족들은 코로나19 지정 병원조차 중환자 병상이 없었고, 호흡곤란 증상이 없는 환자는 입원할 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크리스티나 론기니는 “정부의 늑장 대응이 환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그러나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지 않는다”고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코로나19 사망자 유족들이 10일 베르가모 검찰청사 앞에서 '코로나19 피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고발장을 들고 서있다. [AFP=연합뉴스]
베르가모 주민들의 반발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부모를 모두 잃은 디에고 페데리시는 “우리는 보복이 아니라 권리를 찾으려는 것”이라며 “코로나19는 건강하지 않은 노인뿐만 아니라 건장한 청년에게도 위험하다. 이번 소송이 정의를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을 시작으로 앞으로 유족 150여명이 추가 고소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대 사망률 오명 안고 ‘집단면역’
11일 기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3만4114명으로 미국·영국·브라질에 이어 4번째로 많다. 특히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는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높다. 이날까지 공식 집계에 따르면 롬바르디아주의 코로나19 사망자는 1만6000명을 넘어서면서 이탈리아 전체 코로나19 사망자 수의 절반 수준을 기록했다. 이 중 인구 12만명의 베르가모에서만 6000명이 넘게 숨졌다.

베르가모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아 5월 12일 지역 신문 10개 면이 부고로 채워졌다. [로이터=연합뉴스]
감염자가 많다보니 코로나19 항체 보유자도 57%에 이르렀다. 이탈리아 보건 당국이 4월 말부터 약 40일간 베르가모 주민 2만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 결과다. 값비싼 희생을 대가로 사실상 '집단 면역'에 가까워진 셈이다. 집단면역은 집단의 대부분이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가져 감염병의 확산이 느려지거나 멈추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보통 집단면역을 통한 감염 억제를 위해 인구의 60~80% 정도가 면역력을 가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코로나19 대응으로 강력한 봉쇄조치 대신 집단면역 전략을 택했지만 항체 보유율이 7.3%에 그쳐 방역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일자리 50만 개 사라지고 경제난 심각해질 것”
인명 피해만 컸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는 이탈리아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탈리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1.3%로 전망했다. 여기에 2차 확산까지 일어난다면 –14%까지 급락할 수 있다고 봤다. OECD가 성장률을 두 자릿수로 끌어내린 나라는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이다.
실업대란도 예고됐다. 앞서 이탈리아 국가고용정책공단은 경제성장률을 –8%로 잡을 경우 올해 5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날 OECD가 전망치를 두 자릿수로 끌어내리며 고용난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3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해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이탈리아 베네치아 주요 관광지도 모두 문을 닫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의 경제 타격을 키운 건 관광에 집중된 산업구조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과 이동제한조치, 영업금지령이 장기간 이어지며 관광산업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OECD는 이탈리아가 경제 구조를 전면 개혁하지 않으면 장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심각한 경제난 예고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콘테 총리는 이날 정부와 기업인, 노동조합, 야권을 불러 모아 ‘스타티 제네랄리’라는 회의체를 꾸렸다. 이 회의체는 오는 12일부터 일주일간 릴레이 회의를 열고 경제 회복을 위한 구조 개혁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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